청산했다더니,,,김일성 초대내각 친일파 천지
소식통 “북, 국가 운영을 위해 일제시대의 지식인들이 필요”
북한 김일성 초대 정권을 구성했던 내각과 군부 등의 핵심 간부들 16명이 친일 활동을 한 전력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친일파가 숙청되고 북한 정권이 수립됐다는 북한의 선전과 일부 종북 세력들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난 셈이다.
한 국책연구기관은 북한 김일성 주석 정권의 초대 내각과 군부를 구성했던 인사들을 분석한 자료를 통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초대 내각과 정권 주요인사 16명이 ‘진성 친일파’”라고 밝혔다고 문화일보가 1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 당시 부주석은 일제시대 헌병 보조원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과 7촌 관계인 강양욱 당시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도 일제시대 도의원을 역임했다.
특히 초기 김일성 정권의 군부에는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의 인사들이 다수 포진돼 있었다. 이활 당시 북한 초대 공군사령관과 허민국 당시 북한 인민군 9사단장, 강치우 당시 북한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등은 모두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출신이었다.
홍명희 당시 북한 부수상도 일본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협력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임전대책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한 바 있으며 일제 만선일보 편집부장이었던 박팔양도 북한 노동신문 창간 발기인이자 노동신문 편집부장으로 김일성 정권에 합류했다. 일제시대 검찰총장을 지낸 한낙규도 김일성대 교수로 김일성 정권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승만 정부 초기 내각이 일제시대 임시정부 내무총장을 지낸 이시영 부통령, 광복군 참모장이었던 이범석 국방장관, 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이청천 무임소장관 등 임시정부·광복군 출신인사들로 구성된 반면 초기 김일성 정권 핵심인사들은 친일파로만 채워져 있었다.
북한이 초기 내각 구성에 필요한 지식인, 핵심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과거 친일 행적이 있는 인사더라도 과거에 대해 눈을 감고 핵심 간부로 중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북소식통은 “김일성은 해방 이후 ‘민족 대단결’과 ‘새조선 건설’을 내세우면서 정파와 종교, 신앙과 사상 모든 것을 초월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정권 수립 세력으로 받아들였다”면서 “당시 지식인들은 일제 치하에서 관료로 지내거나 도쿄 유학파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국가 운영을 위해선 일제시대의 지식인들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초기 김일성 정권의 군부 인사 중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출신이 많은 이유는 공군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면서 “빨치산 토벌 운동에 참여했던 전력만 없으면 정부수립 세력으로 포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소식통은 “이들 친일파는 더러는 숙청되고 더러는 계속 기용됐는데 숙청의 이유는 김일성 정권 유지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금도 북한에선 과거 김일성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일제기관에서 근무했더라도 애국적 인사들을 많이 기용했다고 선전하고 있다"며 "실제로 그런 내용의 책들과 영화도 나오고 있다. 실례로 영화 '곡절많은 운명'의 주인공인 정준택 국가계획위원장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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