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D 엘레발' 송두리째 날린 LG 김기태식 ‘형님 리더십’
2년차 감독이 이끈 ‘만신창이’ LG의 놀라운 변화
‘소통과 포용’ 조용하고 세심한 개혁 통했다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와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던 것은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LG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근성 있고 끈끈한 야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역대 최고의 명경기를 펼쳤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당시 LG가 남긴 감동은 팬들에게 승자 못지않은 여운을 선사했다.
이후 LG가 그토록 오랫동안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는 팀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했다. 상위권보다는 하위권,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게 더 익숙했고, 그 과정에서 LG는 숱한 패러디와 징크스 대상이 되며 놀림을 받았다. DTD, 엘레발, 먹튀의 저주, 감독의 무덤, 모래알 군단 등 LG야구의 무능함을 빗댄 신조어들이 10여 년간 끊임없이 탄생했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소위 ‘LG병’을 고치겠다는 일념 하에 지휘봉을 잡았지만 들어올 때의 패기와는 달리 하나같이 만신창이가 돼 팀을 떠나야했다. 누가 오더라도 지금의 LG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2012년 김기태 감독이 LG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베테랑 지도자들도 모두 두 손을 든 팀. 더구나 1군 감독 경험도 일천한 막내 초보 감독이 과연 곪고 곪은 LG병을 치유할 수 있을지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 등 팀 내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등 전력누수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지만 세심하게 자신의 개혁 구상을 실천해나갔다. 성적에 대한 압박에 쫓기기보다 바닥까지 차근차근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치유해가는 길을 택했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은 젊은 선수들로 채우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리빌딩과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인위적인 세대교체가 아니라 베테랑들의 역할과 가치를 존중하며 신구조화에 방점을 뒀다. 고참들이 솔선수범해 팀 분위기를 주도해가면서 그동안 LG 선수단에 잠재적으로 만연했던 개인주의와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다.
이전의 감독들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권위로 접근하거나 LG만의 개성을 무시하고 팀을 인위적인 개혁의 대상으로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김기태 감독은 현역 시절 대표적인 강성 리더십으로 유명했지만 지도자로서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보였다. 선수들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닌 함께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다. 감독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면서 선수들도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였다.
부임 첫해였던 지난해 LG는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초반 반짝하다가 다시 주저앉는 패턴도 이전과 유사했다. 하지만 겉으로만 드러난 결과와 달리 김기태 감독의 LG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비록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가 조금씩 두드러졌고, 지는 경기에서도 허무하게 포기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선수들이 각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경기 외적인 잡음이나 루머가 거의 없었던 최초의 시즌이기도 했다.
지난해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LG는 2013시즌 화려하게 비상했다. 김기태 감독과 LG 선수단조차 이렇게 빠른 시간에 팀이 리빌딩에 성공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5월 말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LG는 10년간 따라다니던 DTD에 대한 의문부호를 떨쳐내고 이번에는 끝내 추락하지 않았다.
4강 진출이 아니라 어느덧 당당히 리그 1위를 다투는 우승후보로 환골탈태했다. 아직 선두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LG는 시즌이 아직 남아있는 시점에 일찌감치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구단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 모두 오매불망 기다려온 숙원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진 셈이다.
LG의 성공은 리빌딩의 모범답안을 보여줬다고 할만하다. 스타급 베테랑 감독들도 이루지 못한 일을 2년차의 김기태 감독이 이뤄낸 것이라 더욱 고무적이다. 최근 프로야구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소통과 포용의 '형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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