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진영 사표 '반려에서 수리로'
청와대 "수리한 이유는 정 총리 입장 발표로 갈음"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기초연금 문제로 사의를 표명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박 대통령이 진 장관의) 사표를 조금 전에 수리했다”고 밝혔다. 앞서 진 장관의 사표는 안전행정부의 결제와 정홍원 국무총리의 수리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됐다. 국무위원 사퇴의 경우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된다.
당초 청와대 측은 진 장관의 사퇴를 만류하는 입장이었다. 정 총리는 진 장관이 이메일을 통해 복지부 출입기자단에 사의를 표명했던 지난 27일 “현재 새 정부 첫 정기국회가 진행 중이고 국정감사도 앞두고 있으며, 복지 관련 예산문제를 비롯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도 많다”는 이유로 사표를 반려했다.
이와 관련, 이 수석도 같은 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 총리의 진 장관 사표 반려는 대통령과 상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9일 진 장관이 기초연금에 국민연금을 연계한 문제를 사퇴 이유로 밝히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당시 진 장관은 장관실 직원의 결혼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는 것에 여러 번 반대했고 이런 뜻을 청와대에도 전달했다”면서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안을 반대해온 사람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양심의 문제”라고 말했다.
진 장관은 또 “(이제) 쉬고 싶다”면서 “그만 사의를 허락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간 추측만 무성하던 ‘기초연금 공약 책임론’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본인이 사퇴하는 이유를 청와대에 떠넘긴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30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국무위원들, 수석들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라며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각자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국민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책임을 청와대에 떠넘기고 사퇴한 진 장관을 겨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또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면서 “당당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이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의중은 정 총리의 사표 수리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진 장관 사퇴 입장발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진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국민을 위한 임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표를 수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 총리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등 중차대한 시기를 코에 두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사의를 표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진 장관을 거칠게 질타했다.
정 총리는 또 “어떤 말로도 이렇게 어려울 때 복지 관련 문제를 책임질 수장이 정부와 국회를 마비시키는 행동은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허탈감을 안겨 줄 것”이라며 “이 문제는 (기초연금에 대한 진 장관의) 소신이나 양심과 상관없는 국무위원으로서의 책임과 사명감의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진 장관 스스로 정책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사의를 굳힌 마당에 더 이상의 사표 반려는 무의미하다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수석은 진 장관의 사퇴 문제로 빚어진 개각 논란에 대해 “개각은 없다. 이 부분은 분명히 해주길 바란다”면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이 수석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각에 대해서는 어제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내용이 맞다. 개각은 없다”면서 “다시 한 번 밝히지만 개각은 전혀 사실 아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 총리의 입장발표 전까진 박 대통령이 진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팽배했다.
이와 관련, 이 수석은 “(국무위원이) 사표를 내서 공석이 되면 그 자리를 인선하는 것은 보통 개각이라 표현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분야, 다른 부처에 대한 개각은 분명히 없다는 걸 토요일에 총리도 말했고, 그 뒤에도 보도돼서 나도 분명히 그 부분을 얘기했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도 같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반나절 만에 사표 ‘반려’에서 ‘수리’로 입장이 돌아선 배경에 대해 정 총리의 입장발표로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 총리는 그간 진 장관의 사표를 반려했던 배경에 대해 “진 장관이 국무위원일 뿐 아니라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으로서 새 정부의 첫 정기국회가 열리고, 예산과 법안심의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앞두고 당연히 재고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사퇴에 대한 진 장관의 입장이 확고한 탓에 박 대통령과 정 총리 입장에서도 더 이상 복지부 장관 자리를 명패만 남아 있는 ‘명예직’으로 남겨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공약 이행 문제를 두고 복지부 장관직이 공석이 됨에 따라 향후 정부의 복지공약 이행에 있어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진 장관이 기초연금 공약을 실패한 정책으로 기정사실화한 탓에 정부의 정책 추진동력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집안싸움’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국정감사다. 야권이 기초공약 수정을 빌미로 정부에 대해 맹공을 퍼부을 것이 자명한 상황에, 장관의 사퇴는 또 다른 비판의 빌미가 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국정감사가 ‘인사파동’, ‘공약수정’ 등과 관련해 난투가 벌어지는 정권심판의 장으로 변질될 소지도 있다.
또 이 수석은 후임 복지부 장관 인선과 관련해 “(조만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청와대가 국감 전후로 인선작업에 착수한다면 착수한 대로, 착수하지 못한다면 착수하지 못한 대로 야권의 거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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