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구째 피홈런 '아듀 오승환' 가능성은
한국시리즈 2차전 무리한 등판으로 3차전 투입 어려워
오승환 없는 가운데 3차전 내주면 두산 절대 유리
20년 전 가을도 그랬다.
투수는 잘 던졌는데 타자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한 투수는 고개를 숙였다. 삼성의 뼈아픈 과거다. 단지 선발처럼 던진 오승환과 마무리처럼 던진 선발 박충식, 그 두 전설의 등번호 21과 17, 투구수 53과 181만 달랐다.
2차전 연장 13회초 오재일에게 맞은 홈런, 이제 한국에선 더 이상 볼 수 없는 오승환의 마지막 투구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오승환이 던진 그 공 한 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두산이 강하다. 지난 17-18일 열린 대구 원정경기에서 한국시리즈 1,2차전을 쓸어 담았다. 넥센과 LG와 치른 혈전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을 게 분명한데 오히려 20일을 휴식한 삼성보다 더 활기차다. 플레이오프 이후 꿀맛 같은 사흘의 휴식도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기엔 역부족인데도 그렇다.
그런 두산 타자들이 '난공불락' 오승환에게 포스트시즌 사상 첫 패배를 안겼다. 그것도 삼성의 선발과 불펜의 정예 투수들이 총출동한 경기에서 힘 싸움에서 이긴 것. 삼성 입장에선 2패 이상의 데미지, 미라클 두산의 완승인 셈이다. 끝판 총력전에서 오승환을 정면승부에서 제압한 것은 잔여경기의 자신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선발 같던' 끝판대장 오승환
오승환이 선발처럼 던졌다. 2차전에 등판한 삼성 투수 중 선발 릭 밴덴헐크의 5.2이닝 다음으로 많은 4이닝이나 던졌다. 선발 두 명을 묶어 등판시키는 1+1의 나머지 1인 차우찬이 던진 이닝은 불과 1.2이닝. 오승환이 사실 선발처럼 던진 경기다.
사실 오승환은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회 1사 1루에서 등판, 13회 1사까지 그의 투구는 환상적이었다. 6타자 연속 탈삼진(한국시리즈 연속 탈삼진 타이) 포함, 무려 12타자를 봉쇄하는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53번째 투구, 힘이 떨어진 오승환의 포심은 돌이 아니라 그냥 직구였다. 공 끝의 힘이 떨어진 151km/h짜리 바깥쪽 직구가 오재일의 배트에 제대로 걸렸다. 우중간 스탠드 중단에 떨어지는 비거리 120m의 홈런이었다. 잘 던지고도 패를 떠안은 오승환은 고개를 숙였다.
사실 오승환은 1이닝 마무리 투수다. 조기 등판 때도 8회에 등판, 1.1이닝을 던지고 시즌을 마무리한 투수다. 그런데 가을야구가 그를 선발처럼 던지게 만들었다. 무려 4이닝 53구를 전력피칭으로 뿌렸다. 시즌 중에도 30구가 넘어가면 볼끝의 무브먼트가 떨어졌던 오승환이 뿌렸다.
오승환은 신체의 유연성이 아니라 근육의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구위를 유지하는 유형의 마무리다. 이런 유형의 투수는 한계 투구수에 대한 철저한 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1승이 다급했던 류중일 감독은 '나믿가믿' 가코처럼 끝까지 믿고 맡겼다. 그게 화근이다.
53구째 피홈런 '아듀 오승환' 가능성은
오재일에게 허용한 홈런 그 공이 마지막 국내 모습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두산이 적진에서 2연승,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반면, 삼성은 필승카드를 모두 꺼내고도 통한의 홈 2연패를 당했다. 잠실서 열리는 3,4차전 모두 두산이 상승세다. 잠실 경기를 모두 가져갈 확률도 현 상태로는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20일 3차전이다. 두산은 유희관을, 삼성은 장원삼을 내세워 배수의 진을 친다. 3차전마저 두산이 가져간다면 삼성으로선 시리즈 스윕패를 걱정해야 한다. 4차전 선발은 올 시즌 두산에 약했던 배영수. 배영수의 투구 패턴과 타이밍이 두산 타자들 입맛에 크게 까다롭진 않다. 배영수의 올 시즌 두산전 성적은 1승2패 평균자책점이 무려 7.78이다.
게다가 한계투구수를 훨씬 넘어 4이닝이나 전력투구 한 오승환이 3차전에도 등판하는 것은 무리다. 이틀은 쉬어야 할 투구수를 2차전에서 기록한 오승환이 3차전에 다시 등판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3차전 삼성으로선 오승환 없는 승리를 일궈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삼성으로선 3차전에서 오승환을 써도 부담이다. 무리하게 3차전에도 등판한다면 남은 경기에서 오승환은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를 게 분명하다. 3차전을 두산에 내주면 4차전은 더욱 불리하다. 이 경우 오승환이 앞서는 상황에서 등판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53구' 오승환과 '181구' 박충식
이별 과정에서 지켜야 할 배려도 있다. 이제 우리 선수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혹사를 시켜서도 안 된다. 토미 존 서저리의 이력이 있는 오승환은 삼성 투수만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다. 보다 철저한 투구수와 이닝 관리로 해외에서 맘껏 국위선양을 할 기회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구단이 오승환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가을밤 찬 공기 속에서 투혼의 53구, 선발 같이 던진 마무리 오승환. 20년 전 가을 마무리처럼 던진 선발 박충식의 181구가 오버랩 된다. 1993년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선발 박충식은 181구 투혼 이후 투수 생명이 단축됐다. 오승환에게 그런 우를 다시 범해선 안 된다. 투구 후 팔을 못 편 박충식의 아픔이 20년 뒤 오승환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마지막 투구가 오재일에게 맞은 통한의 홈런이라면 그를 아끼는 팬들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 유명구단들이 영입 경쟁하는 대투수 스스로 정리할 기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주어지는 게 맞다. 팬들과 마지막인 줄도 모른 채 마운드에서 이별해서는 안 된다.
역대 최고 마무리 오승환. 그의 축 처진 어깨가 팬들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자리 잡는 건 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연장전 수많은 끝내기 기회를 무산시킨 삼성 타자들이 오승환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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