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60대 노인 시대 끝났다지만 왜 지하철만 70세로 올리나"
“정부가 노인들에게 해주는 가장 큰 혜택인데 그걸 뺏는 건 말도 안 되지.”
서울메트로 등 전국 8개의 지하철 운영공사들이 노인 무임승차 연령을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높이는 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대한 노인층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지하철 운영공사 측이 또 다른 노인복지 축소 방안을 들고 나오자 “만만한 게 노인이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지고 있다.
13일 시청역에서 만난 75세 할아버지는 “지하철 운영 적자 탓을 왜 전부 다 노인들에게 돌리는지 모르겠다”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60대가 노인인 시대는 지났다지만 다른 복지혜택도 다 65세부터인데 왜 지하철만 70세로 올리겠다는 것이냐”며 “그 사이에 낀 친구들은 굉장히 기분 나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기준은 65세 이상으로, 이때부터 △기초노령연금 △보건소 진료비 할인 △열차 30% 할인 △국공립시설 무료 이용 △장기요양보험 등의 각종 복지혜택이 주어진다.
대한노인회 등 노인관련 시민단체는 “그 가운데 노인층 피부에 가장 와 닿는 혜택이 바로 지하철 무임승차”라고 주장했다.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은 1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65세가 되면 노인이 돼서 슬프기도 하지만 ‘지공대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층을 일컫는 말)’가 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지하철 무임승차는 정부 정책 중 가장 적은 돈으로 하는 가장 효율적인 복지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현재 대한민국을 만든 장본인인 노인들의 자존심을 자꾸 상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며 “지하철 스스로가 원가 절감을 해서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노력을 하라”고도 했다.
"나이 들었다고 '찬밥' 취급 말라"지만... 젊은층 "고령사회 올 텐데 언제까지?"
약속이 있을 때마다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밝힌 70대 할아버지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축소’에 대해 묻자, 얼굴부터 찌푸렸다.
“노인네들이 타봤자 한 달에 몇 번이나 타겠냐. 어려운 시절에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나이 들었다고 ‘찬밥’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키워 준 어른세대도 중요하게 여기는 게 진짜 복지다.”
지하철 요금 지원을 50% 수준으로 축소하는 또 다른 제도개선안에 대해서도, 할아버지는 “이미 무상으로 지원해오던 것을 50%만 주겠다고 하는 건 50%를 도로 빼앗아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줄 거면 다 줘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20,30대 젊은 층에선 “무임승차로 불어난 지하철 적자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직장인 A 씨(25.여)는 “현재 63, 64세이신 분들의 억울함과 속상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평균연령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적자상태를 떠안고 지금처럼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연령대를 좁히는 것 이외에도 소득별로 교통보조금을 차등지급하거나 무임승차에 시간제한을 두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전국 노인 비율은 ‘고령사회’의 기준인 14%에 근접하는 12.2%로 조사됐고, 지난해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이 추산한 무임승차 손실액은 전체 손실액의 절반이 넘는 4129억원으로 나타났다.
서울메트로 "기본 취지는 노인복지 축소 아닌 정부지원 요구"
지난해 서울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손실액은 2009억7600만원으로 조사됐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노인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손실률도 매년 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노인계층의 강한 반발에 대해서는 “노인복지를 당장 축소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메트로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지하철 적자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정부에 노인복지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적 취지”라고 밝혔다. 국고보조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 차원에서 노인 무임승차 혜택 축소 방안을 검토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공동건의문에 포함된 내용을 실현시키려면 관련 법 개정 등의 절차가 먼저 필요하다. 그런데 노인 분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이 당장 그렇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지하철 무임승차 국고지원에 대해 정부는 “복지정책에 쓸 돈이 더 이상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복지정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지하철 무임승차까지 지원하는 것은 무리”라며 “이를 도시철도공사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타 정부부처 역시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액과 관련한 지원은 해당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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