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사이 금융범죄에 노출된 내 신용카드
회원 가입정보 소비습관 위치정보 등 빅데이터 활용
# 한밤 중 집에서 자던 50대 남성 A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거래하는 카드사 직원이었다. "고객님, 지금 어디십니까?", 이에 A씨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고객님의 카드가 지금 모텔에서 사용됐습니다. 카드 불법 사용으로 신고할까요?"라고 물었다.
그제서야 A씨는 자신의 지갑에서 신용카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카드 사용정지와 신고를 부탁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카드가 사용된 모텔에서 자고 있던 범인을 붙잡았다. 잡고 난 뒤 신원을 확인해보니 황당하게도 범인은 A씨의 아들이었다. 늦은 밤 아빠 몰래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내 여자친구와 모텔을 찾은 것이다.
아빠도 몰랐던 아들의 완전범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카드사는 어떻게 이같은 카드 사용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을까. 해답은 카드 부정사용방지 시스템(FDS, Fraud Detection System)에 있다.
대부분 카드사는 고객보호 차원에서 FDS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FDS는 사고 발생 개연성이 높은 거래에 대해 승인을 거절하거나 고객에게 카드 부정사용을 알림으로써 카드사고를 예방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평균 전체 카드승인 건수의 0.2~0.3%가 FDS 감시망에 포착된다. 매달 평균 10억건 가까이 카드승인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250만건 정도가 FDS로 걸러진다는 얘기다.
지난 20일 기자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농협카드 FDS실을 찾았다. FDS실은 하루 24시간 감시체계로 이뤄지고 있으며 4명씩 3개조로 가동된다.
이곳은 FDS망을 타고 카드회원의 가입정보, 소비습관, 위치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카드사용의 흐름을 모니터링 한다.
일례로 카드 주인이 여성인데 룸살롱에서 결제하거나 휘발유만 주유하던 사람이 LPG충전소에서 카드를 긁었을 경우, 서울에서 카드로 담배를 샀던 사람이 30분도 안 돼 유럽에서 가방을 구매하는 의심거래는 모두 FDS 감시망에 포착된다.
FDS 감시망에 들어온 자료를 기초로 카드사는 일일이 회원에게 전화를 건다. 카드 결제내용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카드사가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카드 부정사용이 회원을 통해 최종 확인되면 경찰에 수사를 요청도 가능하다.
안준석 농협카드 차장은 "카드 부정사용이 의심되는 거래는 FDS의 룰(Rule)과 위험스코어(Score)를 통해 걸러진다"며 "FDS실에서는 카드 고객과 365일 24시간 연락체계를 유지해 부정사용을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FDS망에는 이른바 카드깡으로 의심되는 불법거래가 포착됐다. 경기도에 거주하던 회사원 B씨가 서울시 지방세를 카드로 납부했다. B씨는 사채업자와 짜고 카드깡을 받은 것이다.
안 차장은 "FDS는 도난 카드 추적은 물론 카드깡, 카드대납 등 불법거래도 감시할 수 있다"면서 "그중 해외불법거래가 의심되면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승인을 거절한다"고 알렸다.
이어 그는 "지난달 FDS로 부정사용을 확인해 경찰 수사까지 이어진 경우는 5건이었다"며 "부정사용 금액은 평균 300만원 정도로 대부분 유흥업소나 숙박업소에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카드사가 고객과 통화하지 않아도 승인 자체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출입국 기록과 비교한 의심거래다. FDS실 직원들은 매일 카드 회원의 출입국기록을 확인하며 거래내역을 꼼꼼히 살펴본다. 출입국기록이 없거나 비행기에 있는 시간에 카드결제가 이루어지면 고객 요청 없이 승인을 거부한다.
지능화되는 범죄만큼 FDS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다양한 정보원으로 더욱 정밀해졌다.
안 차장은 "최근 농협카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위치정보도 고객 동의하에 활용할 계획"이라며 "카드로 결제하거나 돈을 찾은 ATM기 위치가 회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다를 경우 이를 회원에게 통보해주는 시스템도 구축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FDS는 카드 부정사용으로 카드사가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 운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고객들이 안전하게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운용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FDS로 카드 부정사용을 적발한 건수는 기복이 크고 또 카드사마다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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