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아닌 연극, 결국은 우리의 삶…연극 ‘레드’
작품 특성에 맞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서 개막
강신일·강필석 초연 멤버 그대로..한지상 합류
“미술을 몰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요.”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Mark Rothko)가 1958년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거액에 판매하려다 취소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연극 ‘레드(연출-김태훈)’가 2년 만에 다시 국내무대에 오른다.
‘레드’는 마크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 단 2명이 출연하는 2인극으로 두 사람이 그림을 놓고 벌이는 언쟁이 10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 속에 펼쳐진다. 특히 두 사람이 그림에 대해 내뱉는 해박한 지식과 해석은 혀를 내두를 정도. 때문에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대다수 일반 관객들에게 어딘가 모를 거리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마크 로스코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강신일(53)은 이 작품이 “지극히 연극을 얘기하는 작품”이라며 “미술을 전혀 알지 못해도 이 연극을 보고 즐거워하고 심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말은 고고하고 정신은 고고한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통속적인 신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의 잔치는 요란하지만 웃깁니다.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들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품이 제 집을 찾았다”고 할 정도로 초연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극장이다. 극장 규모가 줄어 몰입도가 높아졌고, 둘의 감정변화가 객석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객석을 포함한 극장 전체를 마크 로스코의 공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작품 속 그림들에게 걸맞은 장소가 필요했던 것처럼 작품에 딱 어울리는 장소에 들어와 행복합니다.”
연출이 바뀌면서 무대와 연기에 세세한 변화도 있었다. 또 미흡했던 대사도 원작의 의미를 보다 더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수정했다. 강신일은 “영어 대본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 자체가 힘들었다.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 면에서 놓친 것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완했다”고 흡족해했다.
그러나 작품이 좋아졌다고 마음도 편안한 것은 아니다. 초연 당시엔 작품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으로 달려들었다면, 마크 로스코의 정신세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오히려 두려움이 생겼다. 마크 로스코는 말년으로 갈수록 암갈색이나 검은색 등 어두운 색조의 작품을 선보이다 19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거장의 정신세계를 다 이해하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얼핏 그 공포에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레드에 심취하다 이것이 블랙으로 변해갔을 때 내면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니 두려웠죠.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지금 공연이 좀 더 알차고 감동적으로 전달되지 않을까요.”
조수 켄 역에는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강필석이 출연한다. 또 한지상이 새롭게 합류해 번갈아가며 호흡을 맞춘다. 켄은 자신의 결핍을 미술로 채워가다 선망의 대상이던 로스코를 만나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2년 후 스승에게 오히려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필석은 “2년 전에 초연할 때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강신일) 선생님께 죄송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연기자로서 보답하고 싶다”고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가슴 속에 영광의 정서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한지상은 “평소 강신일 선생님 팬이었다. 한 무대에 서면서 논쟁을 벌이는 건지 사랑을 나누는 건지 모를 주고받음을 만끽하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 2010 토니상 6관왕에 빛나는 걸작 연극 ‘레드’는 21일부터 내년 1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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