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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갖고 지들끼리 싸우는 나라' 일본이 웃는다


입력 2014.01.09 15:54 수정 2014.01.09 16:01        이상휘 선임기자

<칼럼>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역사가 이기고 질 문제인가

1993년도인가? 기억이 확실치 않다.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른바 ‘현대판 재판’이었다. 대상은 프랑스 혁명으로 사형당한 루이 16세였다.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 재판을 해보는 것이었다.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 것이 죄목이었다. 예상은 당연히 사형언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배심원의 55%가 무죄를 판결했다. 의외의 판결이었다.

논란이 많았다. 역사적 관점에 대해 시사점을 강하게 던져준 사례였다. 역사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방증이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프랑스를 거론할 것도 없다. 태조 이성계의 집권이나, 연산군의 폭정 등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대사적 관점에서 보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사실이어야 한다. 진실적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유명한 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말이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역사를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유사이래 역사기록은 처절한 방어였다. 이긴자의 몫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역사교과서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이젠 정치권까지 가세해서 점입가경이다. 싸울게 그리 없는가 싶다. 보다보니 가관이다. 학생들 교과서를 가지고 잘났느니 못났느니, 멱살잡이를 하니 말이다.

사진 위쪽은 지난 9월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요구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금성출판사 등 7종 역사 교과서 저자들이고, 사진 아랫쪽은 지난 2008년 교과서포럼이 대안교과서를 발행할 당시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대한민국 교과서는 국정, 검정, 인정, 자유발행 등으로 종류가 있다. 헌법정신과 교육기본법 및 교육과정, 지적재산권, 내용의 보편타당성 등 4가지 영역이 충족되어야 한다.

지금 역사교과서는 검정제다. 민간이 제작해서 정부가 검증한 후 수정, 보완하는 형태다. 그러다보니 쓰는 학자들의 인식과 관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편향되었다 주장하고 쓰는 학자들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은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금성출판사 파문이다. 당시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6종의 한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강하게 저항했었다. 최근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심정이다. 자라는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다. 그것도 역사교과서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는 식의 충돌은 참으로 옹졸하다. 누가 감히 역사의 오류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 가 말이다. 가당치 않는 정치권의 태도다. 그리고 꼴갑지 않은 학자들의 찬반 시비다.

근현대사든, 고대사든 모두가 역사다. 정치권이 정쟁으로 몰고갈 사안이 아닌 것이다. 집단주의와 개인적 편향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싸우면 좋은 결과가 나올까?

그렇치 않다. 결국 신뢰받지 못한 역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폭로주의와 정쟁의 도구로 역사교과서 논란을 부추켜서는 안된다.

감사를 했느니, 그것이 억압이니 하는 것도 그렇다. 특정세력이 교과서 채택을 못하게 압력을 넣었느니, 그렇치 않느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다 본질은 없다. 역사의 진실과 사실을 위한 묵직한 행보가 아니다. 다만, 정치적 이해 관계만 부각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논리만 일사불란(?)하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학문적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말이다.

역사 앞에서 보면 그렇다. 얼마나 가벼운 처신들인가. 옹졸한 논란이며 무책임한 행동들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한판 승부를 벌일게 아니다. 무겁고 겸허하게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권은 앞장서서 본질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해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면,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 가교역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신있는 역사학자들도 나서야 한다. 어떤 방식의 규명이 필요한지, 어떤 제도가 타당한지를 말해야 한다. 침묵하는 것은 비겁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면 말이다. 그게 맞다.

이렇게 이어진다면, 결국 편향된 주장만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 점에서 무겁고 겸허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말과 주장을 할 때인 것이다. 헤집고 달려들고, 할퀴며 싸워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는 시시껄렁한 패거리 싸움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그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갈라져 있는 정치권과 학계가, 올바른 역사를 말할 자격을 있는지 곰곰 반문해 보자. 역사를 가지고 싸우는 나라,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일본은 얼마나 웃고 있을까?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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