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방선거 관전 포인트는 안철수-박원순 염치대결
제갈량과 무학대사, 큰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 아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큰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는 꿈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무학대사가 임금 왕(王)자로 파자(破字) 풀이를 하여 왕이 될 꿈이라고 해몽을 하는 장면이다. 사실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동양에선 왕조가 바뀌거나 반역을 꾀할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고대인들은 꿈을 신의 계시라 여겨 수많은 해몽술, 해몽가, 해몽서를 남겼다. 당연히 역대 제왕이나 정치가들은 해몽을 통치의 수단으로 애용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요순시대와 같은 고대 시기엔 용(龍), 기린 등 신령스런 동물이나 일월성신에 대한 해몽이 많았던 반면 한(漢)대 이후엔 한자(漢字)에 대한 파자해몽술이 유행하게 된다. 문자가 널리 보급된 탓이리라.
그러니 만약 임금을 뜻하는 왕(王)자가 다른 모양이었더라면 이성계의 꿈은 나무꾼이나 목수가 될 운명이거나 개꿈이었을 것이다. 해몽 역시 결과론이거나 음모론! 이성계가 그런 꿈을 꿨다는 것도 본인 말고는 누가 알랴! 이성계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꿈을 꿨더라면? 무학대사 역시 그 빤한 속내에 영합한 해몽을 함으로써 화답한 것이겠다. 북쪽 오랑캐였던 이성계의 조상 무덤이 없거나 신통찮아 풍수 대신 해몽으로 스토리텔링, 즉 꼼수를 부린 것이겠다.
진정한 고수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관전 포인트는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벌이는 안(安)과 박(朴)의 염치대결이겠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20일 “서울시장 후보를 포함해 전부 낸다는 입장”이라면서 “이번에는 양보 받을 차례 아니냐.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정치도의적으로”라고 말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무렴 그는 입만 열면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주는 것 없는 밉상으로 점점 각인되고 있어 그를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시민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가 백번이라도 양보해야 한다”면서도 “정치를 위한 정치, 자리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고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고수끼리의 대결에선 먼저 공격하는 자가 진다. 하지만 박 시장 역시 고수가 못되는지 피하는 바람에 승부를 내지 못하고 둘 다 체면만 구겼다.
제가 만든 신화를 제 손으로 허물다
지난 날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양보하는 바람에 전혀 가망 없었던 박원순이 시장에 당선된 건 사실이다. 헌데 그렇다고 박원순만 일방적으로 덕을 봤나? 그로 인해 안철수가 손해 본 것 있었나? 오히려 자신은 더 큰 덕을 보지 않았나? 해서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지 않았던가? 물론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해 중도 포기했지만 그만큼 성공한 것도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덕분이 아니었나?
이제 와서 빌려준 절대반지를 돌려받겠다지만 그 반지는 이미 힘을 상실했다. 그 반지를 돌려받는 순간 안철수는 영원한 쭉정이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신화도 막을 내릴 것이다. 양보했던 자신의 판단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반족짜리 신화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자신이 만드는 당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민주통합당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삭줍기! 준 반지 돌려받기! 처갓집 지역주의 편승!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이번 지방선거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다지만 아무래도 새바람은 기대 난망. 그저 더하기 빼기밖에 할 줄 모르는 꼼수정치로 국민들 에너지나 소모시키고 말 것 같다. 국민들이 오매불망 바라는 새 정치는 꼼수 정치가 아닌 통큰 정치다. 더하기 빼기가 아니라 곱하기 나누기다.
성냥딱지를 마다한 성냥개비의 운명은?
헌데 만약 박원순이 그 즉시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것을 포기한다고 흔쾌히 맞받아쳤더라면 판세가 어찌 되었을까? 박원순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까? 아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절대신공을 완성했을 것이다. 하여 안철수를 자신의 가마 방석으로 깔고 앉아 유유자적하며 노닐다가 차기 청와대에 무혈 입성했을 것이다. 그 절호의 찬스를 그만 놓친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안(安) 방석’을 내치고 말다니! 정치에서 한 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소치겠다.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야구에서 무사만루 찬스에 득점을 못하게 되면 그 팀은 대개 그날 경기에서 지게 된다. 아무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던 적들이 “어라?”하며 되돌아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주역(周易) 공부가 어려운 건 바로 이런 더하기빼기적 사고 때문이다. 곱하기 나누기 미적분적 사고가 안 되면 백년을 들여다봐도 수가 안 보이는 게 주역이다. 아무튼 양보로 만들어진 신화를 거래로 마감해버린 철없는 두 사람. 그러니까 지난번엔 어쩌다가 얼떨결에 묘수를 두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말았다. 실은 금도끼를 차지하려고 은도끼를 내던졌던 것이다. 곧이어 대선이 기다리지 않았다면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돌려달라는 온 바보, 망설이는 반 바보
마지막으로 이성계가 왜 하필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부탁했을까? 숲(세속)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거리 모사꾼들에게서는 잔꾀밖에 안 나온다. 해서 수많은 통치자들이 깊은 산에 은거한 수도승이나 은사(隱士)들의 한 수를 귀히 여긴 것이다. 물론 그 빤한 해몽을 누군들 모르랴마는 그래서야 영험함을 공증받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고결한 자만이 하늘의 계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렴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개꿈을 믿고 ‘王’자를 내밀었으랴. 이성계의 심상(心相), 즉 천하를 훔칠만한 배포를 지녔음을 확인해준 게다. 동가식서가숙하던 윤여준이 다시 안가(安家)로 들어갔다. 멘토가 아니라고 했으니 무학대사급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정도전 같은 개혁가는 더욱 못 될 것 같은데, 아무튼 이번에는 제대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어물전 꼴뚜기처럼 대한민국 어른 망신 다 시키다 쫓겨날지 두고 볼 일이겠다.
꾀주머니 제갈량은 실패했지만 거간꾼 무학대사는 성공했다. 비위 좋은 것과 배포 큰 것은 다르다. 큰 정치는 계산으로 하는 것 아니다. 머리가 아닌 아랫배로 하는 것이다. 잔꾀가 아닌 베팅으로 하는 것이다. 상대가 아닌 국민을 보고 하는 것이다. 기회란 모든 걸 다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잡는다. 다 버리는 자만이 다 가질 수 있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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