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유출 금융사 혼낼 회초리 "뭐가 낫겠소?"
"여론만 의식해 '징벌적 손해배상' 주장하다가는 기업 다 망해"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징벌적 과징금'을, 민주당은 이보다 더 강도 높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정보유출 관련 행정제재와 형벌 등 사후제재를 대폭 강화한다며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불법 유출된 고객 정보를 이용해 매출을 올리게 되면 관련 매출의 1%가 부과한다"며 "이는 사실상 상한선이 없는 것으로, 금융사의 매출 규모를 고려할 때 어마어마한 과징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에선 좀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며 완강히 맞섰다.
이 두 제도 모두 '징벌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에서 통상적인 행정제재보다 훨씬 큰 금전적 제재를 가한다는 뜻이지만 수혜 대상을 놓고 보면 차이는 분명하다.
징벌적 과징금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금융회사에 과징금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과징금은 당연히 국고로 귀속되는 형태다. 실질적인 손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는 전혀 무관하다.
반면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피해액의 수배, 수백배 이상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피해자 보상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이번 고객 정보 유출 사태 이후 피해 고객을 중심으로 집단소송 움직임이 보이고,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야당이 내놓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여론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각에선 징벌적 과징금을 두고 개인정보가 유출된 건 국민인데 보상을 받는 건 정부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 최근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입장을 확고히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존 법과 모순되며 금융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법 393조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선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이라는 단어는 법적 용어도 아니며 법의 '과잉금지의 원칙'과도 모순된다.
신 위원장도 앞서 지난달 22일 징벌적 과징금이 어떻게 나온 용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비슷한 규정이 있어 이를 원용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피해자는 실제 입은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기대하게 된다"면서 "이 경우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도 있어 전체 금융시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강변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만 보더라도 카드사가 피해자 보상에 소극적인 모습은 아니다"면서 "이미 수천억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정보 유출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전액보상 하겠다는 게 카드 3사의 공통된 입장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재발방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징벌적 과징금도 엄격한 수준"이라며 "여론만 의식한 제재로 기업 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할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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