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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프다' 안현수 부활과 한국 스포츠의 비극


입력 2014.02.11 15:41 수정 2014.02.11 15:55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파벌·외압 등에 좌절하는 천재들 여전히 존재

안현수 사연 공론화해 ‘제2의 안현수’ 막아야

안현수는 러시아 생활에 만족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내면엔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선수들과의 관계는 불편하지 않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를 통해 러시아에 사상 첫 메달을 안긴 안현수(29·빅토르 안)는 1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수단에 대해 이 같이 언급했다. 자꾸만 불편하게 비쳐지는 것에 대해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애석해했다.

아물어가는 상처를 건드려봐야 긁어 부스럼만 될 뿐이라는 게 안현수의 생각이다. 물론, 실제로 안현수의 상처는 아물었는지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 아프지만 쓰린 상처를 건드려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불세출 천재를 홀대한 체육계의 잘못된 시스템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안현수 외에도 많은 인재들이 ‘외부 환경’에 의해 좌절을 맛봤다. 인맥, 파벌 등 체육계의 오래된 관행으로 인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또 흘리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마린보이’ 박태환과 수영연맹의 불화설이 대표적 예다. 박태환은 지난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불화설은 2012 런던올림픽 실격 당시 소통 부재와 마스터스 대회 불참 여파로 쌓인 오해”라면서도 “수영연맹이 서운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방송을 통해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불화를 숨기지는 않았다.

한국 스포츠계 최고 스타인 박태환조차 연맹과의 갈등으로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나마 국민적 성원을 등에 업고 있는 박태환이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대다수는 선수생명조차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안현수 헬멧에 써진 문구다. 이 문장의 속뜻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라는 뜻이지 거대하고 막강한 외부 환경에 맞서라는 뜻이 아니다.

안현수를 비롯해 신다운, 이호석, 조해리, 심석희 등 쇼트트랙 선수단 전원은 지난 4년간 ‘자신과 사투’를 펼쳤다. 숨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한 번 더 다리를 가슴 위로 올렸다. 이를 악무는 바람에 치아가 파절되고 스케이트 날에 허벅지가 찢어지는 소름 돋는 고통 속에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정상에 서는 것보다 정상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외친 스피드스케이팅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또한 자기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불합리한 외부환경’ 짐까지 더해진다면 아무리 세기의 천재라도 이겨낼 방법이 없다.

2006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안현수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파벌 싸움과 팀 해체 등이 그의 선수생명을 위협했다.

8년 만에 국기를 바꿔 달고 올림픽 시상대에 섰지만, 깊게 베인 상처가 완전히 아물리는 없다. 한국인들의 심정 또한 웃프다(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그가 힘겨운 파벌싸움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귀화를 택한 그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지만, 한쪽 구석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한국 팬을 바라보는 안현수도 심난하다.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한 자신의 결정에 대해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는 한편, “그럼에도 나를 이해해 주고 있다”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체육계의 철저한 외면 속에 사라질 뻔했던 그는 어찌 됐든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러시아 국기를 달고 이루어졌다는 점은 여전히 어두운 국내 스포츠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국내 무대에 과거와 같은 악습이 사라졌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제2의 안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안현수 사연’이 가십거리로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것을 막아야 할 때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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