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주변인?’ 이충성, 어디 정착해야 하나
양국 국가대표 발탁 경험, 모두 아픈 기억?
여전히 일본 극우 세력 표적..뒤틀린 역사 희생양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톨이’를 아는가.
재일교포 출신 이충성(29·일본명 리 타다나리)은 단지 축구가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일본에 귀화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영원한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
이충성은 지난 2004년 FC도쿄 시절 오장은의 추천으로 19세 이하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오랫동안 꿈꿔온 목표가 현실이 된 순간이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합숙훈련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했고 가슴에 ‘대못’만이 박혔다.
연습경기에서는 좀처럼 공이 오지 않았고 식사 시간엔 ‘반 쪽바리’라는 수군거림까지 들렸다. 당시 이충성을 취재한 재일교포 평론가 신무광(43)은 “일본인에게 하는 욕설을 ‘같은 민족’ 한국인에게 들었다는 사실은 재일교포에게 엄청난 쇼크로 다가온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이충성이 한국을 떠난 배경에는 파벌로 유도 국가대표의 꿈을 접은 추성훈과 마찬가지로 ´자아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믿고 의지한 아군이 실은 아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14년 지금 ‘일본’으로 귀화한 이충성은 행복할까. 그렇지도 않다.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일본 극우세력은 한인 밀집지역 신오쿠보와 오사카를 점거한 채 연일 ‘혐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이 내건 구호 중 하나는 “김치 냄새나는 이충성은 일본에서 썩 꺼져라”다.
축구장에서도 극우세력이 활개치고 있다. 우라와 레즈 서포터가 대표적이다. 우라와 서포터는 지난 8일 사이타마현 홈 경기장서 열린 사간도스와의 경기서 “일본인만 원한다”라는 인종차별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현수막은 우라와가 올 시즌 영입한 ‘재일교포 이충성’을 정면 겨냥한 것이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J리그 연맹이 조사를 착수했고, 우라와 케이조 사장은 지난 10일 J리그 연맹 사무국을 방문, 서포터의 돌출행동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우라와 프런트도 유감을 표명하며 “(한국계 선수를 향한) ‘지속적인 차별’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우라와 서포터의 만행은 이번에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원정에서 ‘욱일기’를 반입하다 진행요원과 승강이를 벌인 이들이 바로 우라와 서포터다. 한국 K리그 연맹의 강력한 항의에도 우라와는 소 귀에 경 읽기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 4세의 ‘한 맺힌 사연’을 우라와 서포터는 알고 있을까.
일제 강점기, 수많은 한국인이 터전을 잃었다. 농민은 평생 일군 논밭을 빼앗겼고, 도시 상인은 건물이 무단 점거 당했다. 전 재산을 잃은 한국인 중 일부는 일본으로 끌려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학생들은 강제 징집돼 일본이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됐다. 이들 중 한 명이 ‘이충성의 할아버지’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본인들은 재일교포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학대와 폭행, 살인까지 반복했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조선인의 짓´이라는 헛소문을 퍼트렸다.
사회진출이 원활치 않았던 재일교포의 유일한 희망은 예체능 진출, 특히 ‘스포츠’를 통해 성공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본인이 존경하는 스포츠 거목도 있다. 특히 일본 인구 90%가 경의를 표한 프로통산 3085안타 장훈(71·하리모토 이사오)은 일본 프로야구의 자존심이자 뿌리로 불린다.
이충성도 ‘2011 아시안컵’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일본인들을 행복에 젖게 했다. 우라와 서포터중 일부도 이충성 골에 환희에 찬 메아리를 울렸다. 그러나 그때뿐일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자 일본인들은 여전히 재일교포를 멸시한다.
이충성은 영원히 일본과 한국의 ‘주변인’ 신세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가 감싸 안을 줄 알아야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아닐까.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