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선장에게 손가락질 못해, 내 모습 같아..."
<현장>안산 임시 분향소에서 터져버린 '못난' 어른들의 오열
수업 마치고 모여 오던 여학생들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
“미안합니다. 무책임한 선장, 선원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굵은 눈물을 훔치며 분향소 문을 나선 한 중년 남성이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벽면에 붙이고 돌아섰다.
24일 오전, 안산 올림픽 기념관 내 체육관에 마련된 세월호사고 희생자 임시 분향소는 이른 시간부터 분주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분향소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늘어선 조문 행렬은 200m에 달했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분향소 입·출구에는 단원고 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회원들이 양 옆으로 서서 헌화할 꽃을 나눠주는 등 조문객을 맞이했다.
이날 모신 위패는 총 64위. 단원고 학생 61명과 교사 3명의 영정이 커다란 스크린에 나타날 때마다 조문객들은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숙였다.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 한 유가족은 영정 앞에 서서 5분이 넘도록 오열했고, 헌화를 마친 조문객들은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문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정오부터는 조문객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50대로 보이는 여성들, 노부부, ‘무공훈장국가유공자’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맞춰 쓴 70대 노인들, 수녀들, 우두커니 서있는 40대 중반의 남성,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순서를 기다렸다.
이날 오전 수업을 끝으로 하교한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분향소로 향했다. 이들은 왼쪽 가슴에 ‘근조’를 달고 30명씩 단체로 조문에 참여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카메라를 든 취재진을 지나치며 “왜 이렇게 찰칵 대느냐”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일부 여학생들이 영정 앞에서 눈물을 닦고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직 실감조차 나지 않는 듯 굳은 얼굴로 조용히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메모지에 담긴 사죄의 글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해 미안하다”
이날 분향소 출구 오른편 벽면은 희생자를 애도하며 써 붙인 메모지로 빼곡했다. 부실한 관리를 묵인한 사회의 무책임, 아이들을 내팽개친 어른들의 무능함을 ‘자신의 죄’로 고백한 것.
메모지에는 “아들딸들아 미안하다. 그곳에서는 편히 쉬렴”,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좋은 곳 가서 꽃처럼 피어나기를”, “얘들아, 어른노릇을 못하는 어른이어서 정말 미안하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정권심판의 차원을 넘어 국가 자체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을 토해내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조문객은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로 “다음 생에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말기를”이라는 메모를 적었고, 한 50대 여성은 “대한민국이 너희를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다음번에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렴”이라는 메모를 붙였다.
한편 이날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심재철·함진규 새누리당 의원과 임종인 전 의원 등이 임시 분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부분 비서관과 단 둘이 방문해 조문을 마치고 조용히 돌아갔으며, 조문객들 역시 이들을 알아보거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2만 8700명의 조문객이 임시 분향소를 찾았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