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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선장에게 손가락질 못해, 내 모습 같아..."


입력 2014.04.24 16:57 수정 2014.04.24 17:40        안산 = 데일리안 이슬기 기자

<현장>안산 임시 분향소에서 터져버린 '못난' 어른들의 오열

수업 마치고 모여 오던 여학생들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

세월호 침몰 사고 9일째인 24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들의 임시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던 한 남성이 오열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세월호 침몰 사고 8일째인 23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들의 임시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하며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데일리안
“미안합니다. 무책임한 선장, 선원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굵은 눈물을 훔치며 분향소 문을 나선 한 중년 남성이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벽면에 붙이고 돌아섰다.

24일 오전, 안산 올림픽 기념관 내 체육관에 마련된 세월호사고 희생자 임시 분향소는 이른 시간부터 분주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분향소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늘어선 조문 행렬은 200m에 달했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분향소 입·출구에는 단원고 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회원들이 양 옆으로 서서 헌화할 꽃을 나눠주는 등 조문객을 맞이했다.

이날 모신 위패는 총 64위. 단원고 학생 61명과 교사 3명의 영정이 커다란 스크린에 나타날 때마다 조문객들은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숙였다.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 한 유가족은 영정 앞에 서서 5분이 넘도록 오열했고, 헌화를 마친 조문객들은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문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했다.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정오부터는 조문객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50대로 보이는 여성들, 노부부, ‘무공훈장국가유공자’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맞춰 쓴 70대 노인들, 수녀들, 우두커니 서있는 40대 중반의 남성,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순서를 기다렸다.

이날 오전 수업을 끝으로 하교한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분향소로 향했다. 이들은 왼쪽 가슴에 ‘근조’를 달고 30명씩 단체로 조문에 참여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카메라를 든 취재진을 지나치며 “왜 이렇게 찰칵 대느냐”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일부 여학생들이 영정 앞에서 눈물을 닦고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직 실감조차 나지 않는 듯 굳은 얼굴로 조용히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메모지에 담긴 사죄의 글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해 미안하다”

이날 분향소 출구 오른편 벽면은 희생자를 애도하며 써 붙인 메모지로 빼곡했다. 부실한 관리를 묵인한 사회의 무책임, 아이들을 내팽개친 어른들의 무능함을 ‘자신의 죄’로 고백한 것.

메모지에는 “아들딸들아 미안하다. 그곳에서는 편히 쉬렴”,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좋은 곳 가서 꽃처럼 피어나기를”, “얘들아, 어른노릇을 못하는 어른이어서 정말 미안하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임시분향소 한 쪽 벽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메모로 가득차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정권심판의 차원을 넘어 국가 자체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을 토해내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조문객은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로 “다음 생에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말기를”이라는 메모를 적었고, 한 50대 여성은 “대한민국이 너희를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다음번에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렴”이라는 메모를 붙였다.

한편 이날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심재철·함진규 새누리당 의원과 임종인 전 의원 등이 임시 분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부분 비서관과 단 둘이 방문해 조문을 마치고 조용히 돌아갔으며, 조문객들 역시 이들을 알아보거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2만 8700명의 조문객이 임시 분향소를 찾았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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