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가족들 몰래 일부 자원봉사자들 '인증샷'
신발 끌고 다니거나 사진 찍는 봉사자들 '눈살'
시민단체 "진심어린 봉사라면 자세부터 갖춰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도 벌써 40여일이 돼가지만 구조작업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실종자 수는 300여명에서 16명(24일 기준)으로 줄면서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도 썰물처럼 진도 팽목항을 빠져나갔다.
진도체육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미 지난 9일부터 급식봉사를 하던 차량과 자원봉사 천막이 하나둘 철수하기 시작했고, 급식봉사소는 6개에서 절반가량 줄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말 사이 2층에 머물던 가족들을 1층으로 안내하고 2층을 정리했다.
이를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도 더욱 불안한 듯 보였다. 일부 가족들은 사고 내내 팽목항 현장을 지킨 자원봉사자들에게 “끝까지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처럼 그동안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모인 자원봉사자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식사 도우미, 청소, 구호품 운반, 의료지원, 차량봉사 등 폭넓게 실종자 가족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 대부분 생업을 잠시 미루고 실종자 가족을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은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사고 초기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던 실종자 가족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원봉사자들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숙연한 현장에서도 일부 미성숙한 자원봉사자들은 철없는 행동들을 일삼는 등 되레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아울러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퇴색시킨다는 주장도 팽목항 현장 곳곳에서 제보됐다.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줄곧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이어온 한 구호단체 관계자 A씨는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 재난구조의 후진성을 재확인한 셈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의 자원봉사자 요청이 쇄도하는 등 시민의식이 상당히 성숙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A씨는 “그러나 아직도 일부 몰상식한 지원봉사자들이 종종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도 적잖이 있어 문제가 됐다”며 “가령, 재난구조 자원봉사는 무엇보다 각 단체에 마다 고유의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데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부 봉사자들도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심지어 일부 철없는 봉사자들은 이 엄숙한 현장에서도 봉사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알리는데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근처에 있는데도 종종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찍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더라. 본인들은 몰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가족들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팽목항에서 만난 또 다른 자원봉사자 B씨도 “물론 여기서 상주하는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정말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도 재난구조 봉사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분들도 상당히 있는 것 같았다”고 아쉬워 했다.
그는 “여기 계신 실종자 가족들 대체로 심신이 극도로 예민하고 지쳐있다”며 “따라서 자원봉사자들도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하는데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신발을 끌고 걷거나 다소 퉁명하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이를 바라본 실종자 가족들이 불쾌감을 표현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건 여기에 있는 베테랑 봉사단체자들은 다 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재난피해를 당한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실제로 앞서 9일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실종자 가족에게 식사 권유할 때에도 결코 말을 걸지 않았다. 2인 1조로 짝을 지어 한 사람은 ‘전복죽’이라고 쓰인 종이를, 다른 한 명은 전복죽 그릇이 담긴 큰 쟁반 들고 다니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식사의사를 체크할 정도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는 자칫 그들의 말 한마디, 말투, 행동 하나에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전재됐기 때문이다.
B씨는 그러면서 “아파하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지원하는 행위는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제발 기본적인 인격과 소양,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 그대로의 봉사를 하려는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면서 “그저 여기서 봉사활동 시간 채우기 식으로 임하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진중히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고려하고, 봉사에 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봉사, 진심에서 우러난 것 아니라면 한 번 더 고민해야”
또한, 이 같은 갈등이 빚어진 배경에는 정부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현장상황본부 관계자는 자원봉사자 인원을 묻는 질문에 “입구 쪽에 마련된 부스에서 알 수 있다”고 답변했다. 부스에서는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며 “상황실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상황본부와 부스에서는 누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만난 한 자원봉사자 남성은 “눈에 띄면 일을 시키는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자원봉사자 사이에서도 일을 잘하지 않는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팽목항에서 만난 A씨도 “심지어 어떤 봉사자들의 경우, 진도체육관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갈등을 빚다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사정해서 팽목항에 있는 다른 봉사단에 들어와 일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도 몇 명 같이 일해 보니 참 애매한 일들이 많더라. 제발 과시용으로 봉사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마음만 앞서서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정말 여기 계신 피해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허울뿐이 봉사가 아니다”며 “단 1분이라도 곁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함께 울어주는 이웃의 온정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 분들이다. 앞으로 자원봉사를 지원하시는 분들도 그 점을 꼭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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