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소년의 행복한 죽음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가슴 뭉클한 시선과 유머 ‘긴 여운’
국민배우 김혜자, 1인 11역 열연
“삶은 선물이지만, 죽음은 선택이다.”
삶의 끝자락, 즉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몫이라는 의미다.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죽음이 슬픔과 절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희망이자 기쁨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프랑스 작가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54·Eric Emmanuel Schmitt)의 소설 ‘신에게 보내는 편지(Oscar et la dame rose)’를 원작으로 한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백혈병에 걸려 생명이 희미해져가는 10살 소년과 소아병동의 간병인 장미 할머니의 우정을 그린다.
흥미로운 건 죽음을 대하는 여러 갈래의 시선과 이를 뒤집는 방식이다.
오스카는 백혈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더 이상 가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짓는 의사와 슬픔을 가누지 못해 아이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운 부모의 모습이 오스카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거짓말을 늘어놓지도 않는, 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장미 할머니의 존재는 오스카에게 유일한 위로가 된다.
“오스카, 너는 죽겠지. 하지만 너만 죽는 게 아니야. 모든 사람은 죽게 돼있단다.”
장미 할머니는 오스카의 죽음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스카는 장미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하나님과 편지로 소통하면서 하루를 10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12일간 오스카는 사춘기를 지나 결혼도 하고 중년 남자가 된다. 짧지만 긴 12일은 주로 하나님에게 자신의 일상을 고백하는 오스카의 편지로 표현되는데,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대사가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스카 마지막 12일은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그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럽지만, 그래서 더 슬프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쉽게 좌절하고 아파하며 삶을 허비해온 이들에게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힘이 상당하다. 죽음조차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장미 할머니의 모습이 오스카의 삶에 찬란한 빛을 불어넣은 것처럼, 좋은 작품이 관객들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배우 김혜자(73)가 이 작품으로 6년 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했다. 김혜자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이 작품에서 1인 11역을 열연한다. 순식간에 2~3가지의 배역을 넘나드는 관록의 연기, 그리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110분간 홀로 채워가는 놀라운 집중력은 “역시 국민배우”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소품 활용도 돋보인다. 대다수 등장인물들은 오스카가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 갖가지 소품을 활용해 표현되는데, 이 작품 전반에 때 묻지 않은 10살 소년의 시선이 짙게 깔려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내달 15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문의 로네뜨(1566-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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