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섭단체' 서러운 심상정, 등돌린 안철수
<기자수첩>민주당 양보로 복지위 배정 경험에도 환노위 배제 위기 정의당 외면
지난 24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장 앞. 본회의 개회 시각이 지났지만,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 5명은 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이들은 ‘정의당의 환경노동위 배제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였다.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던 의원들은 정의당 의원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에서 하나 줘~ 비인기 상임위인데”라고 말했고, 같은 당 이재오 의원은 “왜 이러고 있어. 이건 말이 안 되지. 새누리당에서 환노위를 빼는 건 말이 돼도, 정의당을 빼는 건 말이 안 되지”라며 심 원내대표를 격려했다.
새정치연합에선 박병석 의원과 문재인 의원, 이목희 의원, 홍익표 의원, 김영환 의원, 진선미 의원 등이 발길을 멈추고 정의당 의원들을 위로했다.
본회의가 시작된 뒤 심 원내대표에게 회의장에 안 들어갈 것이냐고 묻자 그는 “우리를 배제하고 한 원구성을 통과시킨다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느냐. 이렇게라도 양당 횡포를 알려야지”라고 답했다. 환노위에 들어갈 방법이 아직 남아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양당의 의지만 있으면 되지”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본회의가 시작되고 20분 정도 지나 심 원내대표가 홀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심 원내대표는 맨 앞자리에 앉아 기다리다 상임위원장 표결에 앞서 단상에 올랐다.
그는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다수의 뜻이 존중되고 소수도 존중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환노위를 주장하는 것은 개인 국회의원의 호불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라며 “여러 의석도 아니고 단 한 석인데 보호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심 원내대표의 발언이 끝난 뒤 의원석 곳곳에서는 “동의합니다”, “의장님, 정의당에 하나 주세요” 등 정의당을 응원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 원내대표는 다시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의 농성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정의당이 이틀간 농성을 벌인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하반기 국회 원구성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비교섭단체를 환노위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당초 환노위는 새누리당 8석, 새정치연합 7석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상반기 국회에서는 환노위에 지원한 새누리당 의원이 7명밖에 되지 않아 남은 1석을 정의당이 가져갔었다. 하지만 후반기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8석을 모두 가져가기로 결정함에 따라 환노위에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배제됐다.
원구성은 대개 교섭단체간 합의에 따라 이뤄진다. 정당별로 소속 의원들의 희망 상임위를 접수받고, 이후 상임위별 정수를 조정해 의원들을 분배한다. 반면 원내 20석 미만의 정당은 교섭권 자체가 없기 때문에, 교섭단체가 비교섭단체의 몫으로 배정해준 상임위에 한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지난 25일 심 원내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환노위에 남았다. 여야 원내대표가 외교통일위원회에 비교섭단체 몫으로 배정했던 의석을 환노위로 옮기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환노위 정수는 15석에서 16석으로 늘었고, 구성은 여대야소(與大野小)에서 여야동수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야당에 양보한 꼴이 됐다. 여대야소의 상임위 구성이 여야동수로 바뀌면 피해를 보는 쪽은 단연 여당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당 상임위는 전통적으로 야당의 입김이 강했던 환노위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어떤 손해도 보지 않았다. 야당 의석이 줄어든 외통위에는 본래 여당 의석이 많았다. 혹 여야 동수로 구성된 상임위에 배정됐던 비교섭단체 몫을 환노위로 돌렸다면 새정치연합의 양보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원내에 입성했을 때를 상기해본다.
안 대표는 지난해 4월 24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나 한 달이 다 되도록 상임위를 배정받지 못했었다. 원칙적으로는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의 상임위였던 정무위원회에 들어가야 했으나, 그러려면 안 대표가 가지고 있던 안랩 주식 전부를 백지신탁해야 했다.
이때 손을 내민 건 제1야당 민주당이었다.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이었던 이학영 의원은 선뜻 안 대표에게 상임위를 양보하고 본인이 정무위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따라 안 대표는 본인이 원하던 복지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상임위를 둘러싸고 겪는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안 대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정의당의 호소를 외면했다. 24일 정의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을 때, 안 대표는 회의장 내 새정치연합 대표석에 '도도하게' 앉아 자신을 찾아오는 의원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같은 시각 정의당 의원들를 위로하던 사람들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새정치연합 비지도부였다.
또 지난해까지 양당제의 폐단을 극복하겠다며 비교섭단체의 역할론을 강조했던 안 대표는 교섭단체의 우두머리가 된 뒤로 비교섭단체를 협상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
원구성 협상은 원내대표의 소관이라고 하지만,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장 전략공천을 단행했던 안 대표에게 환노위 의석 하나를 비워놓을 만큼의 힘도 없었을까.
뒷다리가 자라는 고통도 없이 개구리가 돼서인지 소속 상임위도 없이 홀로 본회의장을 지키던 올챙이 적 기억을 너무 빨리 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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