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공천' 권은희 당선됐지만 새정연 '먹구름'
보은공천 빌미주며 타지역에 악영향
본인 당선됐지만 김한길-안철수는...
‘보은공천’ 논란으로 재보궐선거 기간 내내 정쟁의 중심에 섰던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 후보가 30일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권 당선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말마따나 ‘국가정보원 댓글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당으로써는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권 당선자는 이날 치러진 광산을 보궐선거에서 53.33% 개표가 완료된 오후 11시 20분 현재 60.41%의 표를 얻어 26.37%를 득표한 장원석 통합진보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권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권력이 국민을 겁박하는 시대에 맞서 정의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밝혔다.
우선 권 당선자의 향후 당내 입지는 장밋빛이다. 새정치연합(구 민주당)이 2012년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1년 가까이 국정원 댓글사태 진실규명에 사활을 걸었던 점을 고려하면, 내부고발로 국정원과 정부의 신뢰를 일순간에 무너뜨렸던 권 당선자는 새정치연합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진실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권 당선자는 국정원 사태를 둘러싸고 민주당의 ‘대선불복’ 논란이 증폭됐던 지난해 4월 서울지방경찰청이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은폐를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김용판 서울지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은 권 당선자의 폭로로 역공의 기회를 얻었고 이후 ‘권은희 지키기’에 열을 올렸다.
이 같은 점들 때문에 권 당선자는 현재까지도 계파를 불문하고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광주지역 의원들도 처음부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광산을에 정치신인이 공천되기를 바랐었다. 이처럼 새정치연합의 재보선 출마자들 가운데에는 드물게 ‘적이 없는’ 인물이 바로 권 당선자다.
애매한 시점 출마로 '보은공천' 논란 확산…당내에선 공천파동
문제는 재보선에 출마한 시점과 전략공천 과정이다. 권 당선자는 지난달 30일 ‘경찰을 사직하며’라는 제목의 서면소감문을 통해 대략적인 향후 계획을 밝혔다. 당시 권 과장은 “7.30 재보선 출마에 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학업과 시민사회 활동, 변호사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권 당선자는 지난 9일 새정치연합의 광산을 보궐선거 후보로 전략공천됐다. 앞서 이 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된 상황이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처음부터 권 당선자를 공천하기 위해 기 전 부시장을 동작을로 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잇따랐다.
또 정치권 안팎에서는 권 당선자가 공천을 받기 위해 경찰을 사직했고, 서울지청의 수사개입 폭로도 결국 정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줄을 이었다. 권 당선자에 대한 공천을 두고 새누리당 측은 “정치적 사후 뇌물죄 공범”, “위증 범죄자에 대한 보은공천”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권 당선자에 대한 전략공천은 새정치연합 공천파동의 단추가 됐다. 같은 지역에 출마했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물론, 허동준 동작을 지역위원장도 경선도 못 치러보고 탁락했다. 이 과정에서 동작을 당원들은 단체 탈당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 전 부시장도 야권연대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같은 상황은 곧바로 새정치연합 지도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새정치연합이 10대 5 정도로 우세하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공천 과정에서 여야간 숫자가 뒤바뀌었다. 권 당선자에 대한 공천으로 시작된 공천파동은 유권자로부터도 ‘폐륜공천’, ‘막장공천’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22.3%라는 초라한 투표율이 권 당선자 전략공천에 대한 광주 유권자들의 민심을 대변한다. 더욱이 새정치연합은 공천파동의 여파로 15개 선거구 중 4개 선거구에서만 당선이 유력환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장 다음달부터 조기 전당대회론을 비롯해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판의 대상이 권 당선자가 아니라 전략공천 자체라는 점이다.
당내 한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전략공천은 당내에서 엉청난 반발과 비판이 쏟아지지 않았느냐”며 “다만 천 전 장관도 권 당선자를 훌륭한 후보라고 치켜세웠을 만큼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권 당선자가 원내 활동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판 무죄 판결시 권은희는 물론, 당 신뢰도도 심각한 타격
반면, 남은 재판 결과와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은 정당은 물론, 권 당선자 본인에게도 장기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 당선자는 지난해 수사 은폐·축소 지시의 당사자로 김 전 청장을 지목했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다. 김 전 청장이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권 당선자가 그동안 주장했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 된다. 새누리당의 지적처럼 위증 범죄자에 대한 보은공천이 되는 셈이다.
권 당선자의 이미지 하락은 정당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통상 2심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6~8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김 전 청장에 대한 판결은 내년 2~3월께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판결 결과에 따라 새정치연합의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승패가 갈릴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권 당선자에 대한 공천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뒤인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내세울 것을 요구했었다. 당의 입장에서는 대법원 판결 전까지 권 당선자가 시한폭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영입하더라도 활용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편의 재산 축소 의혹도 계속해서 권 당선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법적으로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권 당선자 남편의 재산이 신고 대상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내 한 재선의원은 “권 당선자가 단순히 변호사라면 모를까, 공직자라면 남편이 그렇게 사업을 하면 안 된다. 법은 안 어겼을지 모르지만 옳지 않은 일”이라며 “준비가 부족했고, 지도부도 그래서는 안 됐다. 공천을 하려면 20대 총선 때 비례대표 1번 같은 경우로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권 당선자의 원내 입성은 계파갈등을 초래하고, 당 지도부의 입지를 흔들 명분만 마련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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