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협상 중 장외투쟁? 피해자 위한다더니...
<이강미의 재계산책> '협상보다 장외투쟁'으로 내부분열 수습 의도?
'판 키우려는 의도'라면 피해자가족 두번 울리는 셈
순항을 타고 있던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백혈병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협상이 얼어붙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양측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올림측이 지난 18일에 이어 25일 느닷없이 거리로 나섰다.
유족대표 황상기 씨를 주축으로 한 반올림은 25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돌발 기자회견을 갖고 "백혈병에 걸린 직원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라"면서 “삼성은 피해자 유족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시간을 끌지 말고 진정성있는 자세로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의 기자회견은 지난 21일 서울고등법원이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이숙영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업재해 항소심 판결을 빌미로 한 것이었다.
서을고법은 이번 항소심에서 황유미·이숙영씨 등 2명은 원고승소 판결했지만, 함께 소송을 낸 고 황민웅씨 유족과 투병 중인 김은경, 송창호씨 등 3명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이같은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협상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협상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5월부터 본격화된 반올림과의 협상이 일정부분 진전되고 있는 현재상황을 감안하면 이날의 시위는 아무리 봐도 느닷없다. 이번 항소심 판결이 지난 2011년 1심 판결과 달라진게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상대에게 해결하라고 윽박지르는 격으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심의 단초는 반올림 활동가와 일부 가족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협화음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반올림과 삼성전자의 협상에서 삼성전자는 고통을 겪는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보상문제를 빨리 매듭짓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반올림은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삼성은 보상만 처리하고 이 문제를 덮으려 할 것이라며, 세부적인 요구조건이 담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하고,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는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때 터져나온 것이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였다. 반올림이 명분을 앞세워 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였다.
반올림의 협상대표단 8명 중 절반이상인 5명이 실무협상 두 달여만인 지난 13일 제4차 실무자협상에서 삼성전자의 뜻에 같이했다. 어느 정도 보상기준안이 마련되면, 나머지 피해자가족들까지 확대적용하는데 한층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로부터 닷새후인 지난 18일 황상기 씨를 주축으로 한 강경파 반올림측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난데없이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전자의 진정어린 협상자세”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누가봐도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곤 불과 일주일사이 두 차례에 걸친 반올림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이들은 반올림이 여론의 압박과 내부 피해자 가족의 분열을 항소심 판결을 활용해 여론몰이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협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나 주장은 협상이라고 볼수 없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뢰감을 심어줘야 협상은 이뤄진다.
반올림측의 이번 돌발행동은 협상대표단으로서의 신뢰감에 큰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말았다. 양측이 어렵게 합의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얼마든지 여론몰이로 뒤집어버릴 수 있다는 불신을 안겨준 것이다. 더 나아가 반올림이 문제해결 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반올림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초기부터 반올림과 함께 이 문제를 거론해온 한 단체는 "반올림은, 백혈병교섭의 주체는 피해유족과 노동자임을 분명히 선언하라", "피해가족들의 말을 경청하고 항상 겸손하고 올바른 처신을 할 것를 충고한다" 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백혈병 문제는 무려 7년간 끌어왔던 사안이다. 삼성전자도 권오현 부회장까지 나서 그 어느때보다 강한 문제해결 의지를 갖고 이번 협상에 적극 임하고 있는 만큼 반올림도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
양측이 어렵게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앉은만큼 더이상 이 문제를 명분없는 장외투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판을 키워 보겠다’는 심산이라면 그것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두번 울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당초 반올림이 주장했던 대로 제3의 객관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중재위원회를 통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서로를 마주보는 데서 시작한 것처럼 문제해결의 결론도 협상에서 찾아야 한다. 장외로 나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올림은 이번 돌발행동으로 실추된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협상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올림은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지금까지 황상기씨 등과 함께했던 반올림 협상단 8명 중 절반이 넘은 5명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대다수 피해자 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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