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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든 자리' 오승환, 바뀐 것은 호랑이 유니폼


입력 2014.08.31 16:48 수정 2014.09.01 09:52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센트럴리그 세이브 부문 1위 질주..독보적인 첫 시즌

사자 유니폼 한국 무대와 달라진 것은 호랑이 유니폼뿐

오승환의 첫 시즌은 사실상 독보적이다. ⓒ 연합뉴스

‘2위와 12세이브 차’

오승환(32·한신 타이거즈)의 현재 성적표다.

시즌 33세이브로 센트럴리그 세이브 부문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인 오승환은 매티슨(21S·요미우리)에 멀찌감치 앞서있다.

시즌 144경기 치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한신은 117경기 치러 27게임 남겨뒀다. 반면 매티슨의 요미우리는 30경기를 남겨뒀다. 매티슨이 오승환보다 3경기 더 남겨뒀지만 30경기에서 12세이브 격차를 역전시킬 확률은 희박하다.


'역대급' 일본 데뷔 시즌

오승환의 첫 시즌은 사실상 독보적이다.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 일본에 진출한 역대 스타들 중에서 첫 시즌에 한국프로야구에서 기록한 성적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록을 수립 중인 선수는 오승환이 유일하다.

'국보' 선동열(현 KIA 감독)은 주니치에 입단한 1996년 첫 해에 5승 1패 3세이브, 평균자책 5.50을 기록하며 국내팬에게 충격을 안겼다. '국민타자' 이승엽(삼성)도 마찬가지. 이승엽은 지바 롯데 마린스로 건너간 2004시즌 타율 0.240 14홈런에 그쳤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한화 코치) 역시 주니치에 진출한 1998년 첫 해, 타율 0.283에 10홈런 18도루에 머물렀다. 이종범은 자신의 원래 포지션이던 유격수에서 밀려 외야수로 전환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타격 3관왕 출신 이대호(소프트뱅크) 역시 오릭스에 입단한 2012시즌, 2할대 타율(0.286) 24홈런에 그친 바 있다.

국내에선 독보적인 타격을 자랑하던 빅보이의 존재감엔 다소 못 미치는 성적표였다.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던 정민철(한화 투수코치)와 정민태(롯데 투수코치)는 2년 동안 3승과 2승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귀국했다. 그나마 일본 진출 첫 해 수준급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삼성으로 돌아온 뱀직구 임창용이다.

국내 최고 좌완이던 '야생마' 이상훈 역시 마찬가지. 주니치에 입단한 1998년 첫 시즌 무려 4.68의 평균자책에 1승을 건진 게 전부. 이듬해인 1999년에는 불펜투수로 보직이 변경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혜천(NC)도 야쿠르트에 입단, 두 시즌 평범한 성적을 기록한 뒤 귀국을 택했다.

그나마 임창용은 야쿠르트에 입단한 2008시즌 33세이브로 부활을 선언했다. 하지만 시즌 평균자책점이 3.00이었다는 게 옥에 티. 한국프로야구를 거쳐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들 중에서 입단 첫 해에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던 보직과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는 오승환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마무리였던 오승환이 일본에서도 최고 마무리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프로야구 수준의 성장과 동시에 일본프로야구의 침체와도 맞물려 있다. 다르빗슈(텍사스), 다나카(뉴욕 양키스), 후지카와 큐지(시카고 컵스) 등 일본의 특급선수들이 최근 메이저리그로 속속 진출, 특급 스타의 부재와 더불어 리그 자체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된 상태.

이 틈을 오승환이 잘 파고들어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발돋움했다. 자신의 것을 그대로 해낼 수 있는 오승환의 뚝심과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이 일본에서도 통했다. 변한 것은 삼성의 사자가 아닌 한신의 호랑이 유니폼뿐이다.

도쿄돔 만원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표정과 굳게 다문 입 모양은 위기에서도 전혀 동요 없던 삼성 시절 오승환 그대로다. 150km/h를 넘나드는 돌직구와 슬라이더의 단조로운 투피치 패턴도 한국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비록 26일 요미우리전에서 폭투 2개와 2피안타, 1볼넷 등으로 충격적인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 충격을 지우는 데 단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다. 27일 바로 설욕에 성공, 요미우리를 상대로 시즌 33세이브를 올렸다. 국내에서도 롯데나 두산에 블론 세이브를 기록할 때도 있었지만 바로 되갚는 오승환의 강한 승리욕이 일본에서도 빛을 발한 셈.

오승환은 국내프로야구 출신 선수 중 첫 시즌 최다 세이브(임창용 33세이브)와 타이를 기록했다. 1세이브만 더 추가하면 신기록이다. 나아가 6세이브만 추가하면 역대 한국프로야구 출신 최다 세이브(선동열, 38세이브)를 경신하게 된다. 국보를 넘어 새로운 국보가 탄생하는 셈이다. 선 감독이 일본 진출 2년 만에 이룬 기록을 단 1년 만에 해치우게 된다.

게다가 세이브 타이틀을 따내게 되면 그 또한 최초. 선 감독은 1997년 38세이브를 기록,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당시 요코하마)와 공동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구원승에서 밀려 구원왕 타이틀을 아쉽게 놓친 바 있다. 오승환이 세이브 부문 타이틀을 따내면 임창용은 물론 선 감독 기록마저 넘어서게 된다.

선수의 가치는 떠난 뒤에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오승환이 떠난 삼성은 불펜진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10년 동안 난공불락이던 삼성의 빗장이 올 시즌 자주 풀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다. 오승환의 난 자리가 뚜렷한 삼성이다. 반면 '수호신' 후지카와의 난 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한신이다. 오히려 오승환의 든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시카고 컵스로 진출하기 직전인 2012시즌 후지카와 규지가 올린 세이브는 24. 오승환은 이미 그 숫자를 가볍게 넘어섰다. 오승환이 떠난 삼성은 그 공백을 실감하고 후지카와가 떠난 한신은 그 공백을 느끼지 못한다. 오승환이 한국프로야구가 배출한 국보급 마무리임을 재입증하는 근거다.

이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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