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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16년’ 국노 김주성의 화려한 피날레


입력 2014.10.05 10:06 수정 2014.10.05 10:10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16년간 남자 농구 대표팀서 든든한 버팀목

노쇠화 두드러졌지만 베테랑 가치 빛내며 우승

김주성의 대표팀 16년은 우승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현역 최장수 국가대표 김주성(35·원주 동부)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김주성은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을 시작으로 무려 16년째 대표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아시안게임 출전 횟수만 무려 다섯 번이다.

소속팀도 모자라 비시즌에는 대표팀에서 끊임없이 혹사당하는 김주성의 팔자를 빗대어 ‘사골’ ‘국노’(국가의 노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영원한 국가대표일 것 같던 김주성도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김주성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무대였고, 이란과의 결승전은 고별전이었다.

누구도 오랜 세월 대표팀을 지켜온 김주성이지만 그의 태극마크 경력은 짧은 영광과 긴 오욕으로 점철되어있다. 갓 프로 데뷔를 앞둔 풋풋한 23세이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을 통해 영광스러운 순간을 맛보기도 했지만 이후 김주성에게 대표팀은 아픈 추억이 더 많았다.

2005~2006년 1,2차 도하 참사(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2009년 텐진 참사 한국농구의 굵직한 흑역사를 논할 때마다 김주성은 시대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대표팀을 지켜온 김주성이었지만 추락하는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 앞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모두 체험한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김주성이 올해 대표팀에 임하는 각오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태극마크 경력에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도 강했지만, 그보다 고참급 스타로서 무너진 한국농구의 위상과 인기를 되살려야한다는 사명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한국 농구는 비록 전패에 그쳤지만 16년 만에 농구월드컵에 두 번째로 출전했고,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사상 첫 남녀 동반 우승에 도전장을 던졌다. 16년 전 풋풋한 막내였던 김주성은 어느덧 문태종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베테랑 반열에 올랐다.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표팀 부동의 주전이었던 김주성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김종규, 오세근, 이종현 등에게 자리를 내주며 출전시간이 부쩍 줄었다. 쉬운 득점찬스를 놓치고 실책을 남발하거나, 거구들과의 몸싸움에서 힘겨워하는 모습은 천하의 김주성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김주성은 코트에 나와 있는 동안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본인이 직접 득점을 올리지 않아도 궂은일을 자처하며 리바운드와 수비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크고 빠른 선수들을 상대로 그림 같은 블록슛을 성공시킬 때는 녹슬지 않은 농구센스를 증명해보였다. 벤치에 물러나있을 때도 후배들을 위하여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실질적인 리더로 활약했다.

결승전에서 이란을 극적으로 제압하고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김주성은 누구보다 먼저 벤치에서 뛰어나와 선수들과 얼싸안았다. 코칭스태프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고 이어 양동근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코트를 왕복하기도 했다. 프로무대 우승 때도 보지 못했던 김주성의 환호에는 오랫동안 국가대표로서 영욕을 거듭하며 가슴속에 남아있던 마음의 짐을 모두 덜어냈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김주성은 이날 우승이 확정된 이후,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문태종 같은 베테랑들과 함께 후배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기도 했다. 김주성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 아시안게임과 국가대표 경기를 아름다운 피날레로 장식했다. 16년간 한결같은 소나무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대표팀을 지켜온 진정한 국가대표를 위한 최고의 작별선물이었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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