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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무분규 깨진 현대중공업 '쌍차 사태' 기억하라


입력 2014.11.27 13:20 수정 2014.11.27 18:41        박영국 기자

[기자의눈]3조 적자에 고액 임금인상 요구…'회사 살리기'가 급선무

현대중공업 노조가 20년만의 부분파업에 들어가는 27일 오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근로자들이 출근하고 있다.ⓒ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19년 무분규 기록을 깨고 27일 오후 1시부터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노조가 사측의 추가 임금인상안을 내놓지 않으면 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한 바로 전날 아침 대표이사가 조합원들에게 “더 이상의 임금인상은 제시할 수 없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돌리며 불을 질렀으니 파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26일 오전 권오갑 사장이 조합원들에게 전달한 글은 제목은 ‘호소문’이었지만, 내용은 사실상 ‘경고문’과 다름없었다. “회사가 어려운데 무슨 임금인상이냐. 가뜩이나 임금 부담으로 비용경쟁력이 떨어진다. 기존 인상안만으로도 회사로서 큰 부담이다. 더 이상 노조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 파업을 단행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등이 주된 내용이다.

지난 9월 대표이사로 부임한 권 사장으로서는 노사갈등 봉합이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다독이기는커녕 자극하고 엄포를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올 들어 3분기까지 현대중공업이 기록한 3조원대의 적자는 ‘부실 정리’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물론, 과거의 적자는 앞으로 이익을 내면 메울 수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들어 팔수록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 손해를 보는 구조다. 절대 가혹한 평가가 아니다. 대표이사가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권 사장은 호소문에서 “원가가 높다 보니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약 6~7% 가량 손실이 생긴다”고 밝혔다.

회사가 돈을 못 벌면 회사에 돈을 빌려준 이들도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기업의 상당수는 자기자본의 몇 배에 해당하는 빚을 지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같이 고가의 원자재로 고가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조선업종의 경우 다른 업종보다 부채 비율이 높다.

3분기말 현재 현대중공업의 부채총계는 37조1328억원으로, 자본총계(16조8489)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 중 대부분인 28조9385억원은 짧은 기간 내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다. 유동부채 중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해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단기금융부채가 10조원을 넘어선다. 빚 진 자의 살림이 위태위태하면 돈을 빌려준 이는 회수하려 하고, 새로 돈 빌릴 곳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권 사장은 “우리 회사 살림이 건전한가에 대한 금융기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회사 재무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막기 위해 회사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문제는 이같은 위기를 노조도 체감하고 있는지 여부다.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회사측은 기본급 3만7000원(호봉승급분 2만3000원 포함) 인상, 격려금 100%(회사 주식으로 지급)+300만원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임금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1%) 인상, 성과금 250% +알파, 호봉승급분 2만3000원을 5만원으로 인상,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격차가 크다.

물론, 현대중공업의 기업 규모와 조선소 근로자들의 고된 작업강도를 감안하면 회사측 제시안을 두고 ‘충분’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회사가 생사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많건 적건 임금을 지급하는 건 회사가 생존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기존 적자 구조에서 인건비 부담이 더 늘어난다면, 적자는 더 쌓이고 그걸 메우려면 돈을 더 빌려야 하고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채권자들이 등을 돌려 회사는 무너질 수 있다.

‘설마 현대중공업 정도의 대기업이 무너지겠는가,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라도 살려내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링거를 꼽고 산소호흡기를 대주는 것도 생존 가능성이 있을 때나 하는 일이다.

우리는 불과 5년 전에 쌍용자동차가 무너지며 직원 2600여명이 직장을 잃은 사례를 알고 있다. 당시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와 관련된 이들은 “그 때 직원들이 고통분담에 동참했으면 그 정도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중공업이라고 그 꼴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적자더미의 회사에게 임금을 더 주지 않으면 파업을 하겠다는 것은 황금알이 충분치 않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이상 황금알은 얻을 수 없다.

이번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으로 19년 무분규 기록이 깨지게 됐지만, 그깟 상징성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오히려 ‘19’라는 숫자는 그동안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양보해 왔는지를 증명해준다.

파업 시간이 4시간에 불과한 일종의 ‘경고성’이라는 것도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여전히 회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회사가 이익을 낼 때도 임금을 동결했다는 억울한 사연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싸울 대상은 팔팔하고 돈 잘 버는 회사여야지 지금의 축 늘어진 현대중공업은 아니다. 일단 기력을 회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다.

만일, ‘회사의 경영상황이 좋아지면 동종업계 어느 회사보다 충분한 대가로 보상해주겠다’는 권오갑 사장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때 들고 일어난 노조를 비난할 이는 없을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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