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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50만의 강을 넘다


입력 2014.12.13 10:02 수정 2014.12.13 10:06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제2의 워낭소리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

독립다튜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컷.ⓒ아거스필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놀랍다는 반응은 가능하다. 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 흥행작이라는 독립다큐영화의 흥행관객수가 개봉 일주일여만에 5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물론 할리우드 대작들을 물리치고 일일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독립다큐영화의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의 역주행이 잔잔히 파문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1억 2천만원 밖에 제작비를 들이지 않은 작품이 한국 상업영화는 물론 할리우드 대작까지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의문점이 많이 일기도 한다.

대체로 한국인들의 특유의 가족주의와 집단주의 심리 그리고 SNS의 전염효과가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젊은 사람들까지 감동하는 영화라니 궁금증이 일어난다. 노부부 두명을 다룬 영화를 왜 젊은이들까지 선호하는지 호기심이 일어나겠다. 대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작품을 보기 때문에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젊은이들이 볼만한 작품들이라면 뭔가 재밌는 흥미거리가 있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즘에는 SNS를 통해 회자되는 콘텐츠들이 뒤늦게 롱런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보고 싶은 관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늠하는 곳이 중요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할머니의 입담과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입담은 전체 이야기 흐름을 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다. 스스로 말을 이끌어갈 수 있는 주인공이 중요한 법이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 좀 더 극적인 요소를 죽음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는 마치 영화 '워낭소리'에서 소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영화의 콘텐츠 차원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는 소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로 등장 캐릭터를 바꾸었다. 죽음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죽음학의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죽음에 대해서 본격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별을 앞둔 두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죽음 앞에 인생을 어떻게 회고 하고 정리할 수 있는지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픽션적인 상황이 아니라 실제 사건 즉 다큐 방식으로 담겨진 것이 리얼리티를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상업영화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지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보다는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적인 소망을 대리실현시키고자 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은 노화를 뛰어넘어 인류를 구하고 가족도 보전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드라마 '미스터백'과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는 젊은시절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기도 한다. 노화에 대한 저지는 인간의 영원한 꿈이기 때문에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이를 대신 실현시키려고한다.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판타지 관점으로 다루는 사례가 많아보니 오히려 그것을 현실에서 올곧이 대면하며 성찰할 수 있는 계기는 적어졌다. 그런 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소의 죽음을 담아내어 노년의 인간과 소의 이별을 다루면서도 배우자와의 노년기 이별을 간과했던 점을 '님아, 그강을 건너자마오'에서 담아주었던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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