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연의 우리 혼 우리 터-남근석 기행>하늘에 제사 지낸 천제단 유적
서울의 진산 북한산에서 서쪽 향로봉을 거쳐 불광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불광산 정상에 족두리봉(370m)이 있다. 이봉우리는 별칭이 여러 개다. 보는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형상으로 보여 수리봉·시루봉·독바위·유두봉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향로봉에서 바라보면 뽀족한 수리봉 형상이며. 앞쪽에서 보면 족두리 모양이다.
이 족두리봉에 언제 누가 파놓았는지 알 수 없는 직경 1m 정도의 둥그런 구멍이 있다. 여성음부를 나타내는 알터로 부르는 구멍인데, 이런 알터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인공적인 것으로 작게는 계란정도 크기부터 천차만별이다.
알터는 다른 말로 성혈로 부른다. 즉 여성의 성기 또는 자궁을 상징물로 삼아 이곳에 길쭉한 돌을 삽입해 갈면서 기도를 드리면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의 토속신앙 처다.
그러나 알터 규모가 1m 정도 크기가 되면 마을단위나 국가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제단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산백운대. 속리산문장대 철원의 명성산 등이 그런 곳인데, 어떤 강력한 세력들이 영토와 종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족두리봉의 알터에는 작은 성혈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이곳 알터는 큰 집단에서 제사를 올 지내던 천제단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이곳에서 남쪽으로는 북악산·인왕산 등 서울도심이 훤하다. 발아래는 탕춘대성과 한양도성, 북한산성까지 조망권이다.
족두리봉은 마치 여성의 치마가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형태다. 인근에는 기도처로 이용하는 해골바위·남근석 닮은 낙타바위·여근석 등이 즐비하며, 산 계곡 깊숙한 곳에는 지금도 무당들이 굿판을 벌이기 위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불광산 천제단 알터 홈 안에는 누가 새겨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십자(十)가 그려져 있다. 십자는 태양·달·별·하늘·풍요 등 종교를 상징을 하는 것으로 고대부터 질서를 지키는 기능으로 사용돼 왔다.
알터에는 비가 오면 구멍에 물이 고이는데 음양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때론 물이 넘쳐나 알터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는데 음푹 파인 암반의 곡선이 마치 여성의 음부형상이다.
하지만 천제단 알터는 등산객들조차 유래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관심 밖이다. 하루일정으로 도시락과 막걸리 마시며 기분 좋게 산행을 즐길 뿐이다. 등산객들 중 일부는 알터에 들어앉아 가지고 온 음식물을 먹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무지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 한심스럽다. 관할 지자체에서 천제단의 유래를 밝히는 안내판이라도 세우면 어떨까?
이왕 족두리봉까지 왔으나 위쪽에 있는 향림사지도 답사하는 것이 역사의 지식을 얻는다. 향림사지는 고려현종 원년(1010년)에 거란이 침입하자 고려를 개국한 태조의 관을 피난시켰던 곳이다. 현장을 가다보면 향림담이란 못이 있으며, 이곳에서 100m 올라가면 거대한 옛 절터가 향림사다. 하지만 절은 사라지고 육중한 석축들만 붕괴된 채 무수한 전설만 남기고 있다.
천재단 가는 길은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로 내려 북한산생태공원 방향으로 가면 등산로가 나온다. 등산로는 원만하지만 족두리봉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소요시간은 역에서 넉넉잡아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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