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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 승승장구, 한국축구 고질병 없었기에 가능


입력 2015.01.26 13:36 수정 2015.01.26 13:40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4개월 만에 최악의 조건으로 뛰어든 아시안컵

주축선수 이탈 불구 4연승 순항, 무엇이 달랐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했던 노장 차두리의 발탁은 슈틸리케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연합뉴스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차가 너무 커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기용할 만한 공격수는 박주영-이동국-김신욱 밖에 없다."
"K리그에서 A급인 선수도 유럽에 나가면 B급이다."
"외국인 감독은 어차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이지만, 끝까지 한국축구를 지키는 것은 우리 국내파 축구인들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했던 문제의 발언들이다. 공통점은 대표팀이 위기나 논란에 봉착할 때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할 때 쓰는 단골 핑계거리였다는 점이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4강에 오르며 55년 만의 우승에 도전중인 슈틸리케호의 선전은, 역대 국내파 대표팀 감독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주는 증명과 같다.

슈틸리케호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 속에서 아시안컵을 치르고 있다.

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불과 4개월 만에 팀을 조직해 처음 치르는 메이저 대회다. 게다가 대회 개막 전부터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공백으로 최상의 멤버들을 선발하는데 실패했다. A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꼽혔던 이동국-김신욱-박주영이 모두 빠진 상황에서 A매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 위주로 공격진을 꾸려야 했다.

대회 개막 이후에는 전력의 핵심인 이청용-구자철마저 조별리그에서 잇달아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하지만 슈틸리케호는 4연승, 4경기 연속 무실점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당당히 4강에 올랐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은 비주전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잘 메웠다.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가 뚜렷하고 유럽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지지만 팀으로서의 결속력이 한층 끈끈해진 모습이다.

특히 이번 아시안컵의 최대 수확으로 여겨지는 차두리-김진현-이정협의 재발견은 어쩌면 파벌과 인맥으로부터 자유로운 슈틸리케호였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불과 반 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만 해도 A대표팀 명단에 없던 선수들이었다. 차두리는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고, 김진현은 대표팀 골키퍼 중에서도 4번째 옵션, 이정협은 아예 이번 아시안컵 전까지 대표팀 경험이 전무한 무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핵심 멤버이자 4강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약진했다. 과거의 명성이나 이름값, 고정관념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감독들이었다면 이들은 지금도 결코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선수들이 아니다. 충분히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재능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능력에 합당한 '기회'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그가 '외국인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국내파 감독들처럼 인맥이나 학연, 외부의 여론에 휘둘리지 않았고 '제로베이스'와 '원칙'에 의거해 합리적인 선수 선발을 단행했다. 그러한 소신은 슈틸리케호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끈끈하고 저력 있는 팀으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열악한 현실에 불평하지 않고 위기를 핑계로 삼지 않는 슈틸리케 감독의 뚝심 있는 행보도 최근 몇 년간 건강한 리더십이 실종된 대표팀에서 필요로 했던 덕목이었다. 한국축구가 지난 4년간 왜 흑역사를 써내려갔는지에 대한 냉철한 자성과 재평가가 바로 슈틸리케호의 성공을 통해 다시 이루어져야 할 대목이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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