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축구’ 생채기, 아시안컵으로 치유할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홍명보호, 월드컵 참패 후 추락
슈틸리케 감독 6개월 만에 전혀 다른 '강팀'으로 변모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몰락한 한국 축구의 침체기는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진정한 ‘원팀’ 슈틸리케호가 한국 축구의 생채기를 보듬어주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원대한 도전에 나선다. 한국은 UAE를 꺾은 개최국 호주와 오는 31일 시드에서 결승전을 펼친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던 대표팀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난 직후였던 2013년 6월, 홍명보 감독을 전격 선임했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까지 1년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미 닻을 올렸을 때부터 여러 구설에 시달렸던 홍명보호다. 홍명보 전 감독은 부임한지 한 달 만에 기성용 SNS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고, 무엇보다 애제자였던 박주영의 불분명한 거취로 논란의 중심에 서야했다.
월드컵 본선의 시간이 점점 다가왔지만 경기력도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지난해 1월, 미국 전지훈련 당시 멕시코와의 친선전서 0-4 대패한데 이어 미국에게 마저 0-2로 패하자 본격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절정은 역시나 최종엔트리 발표였다. 홍 전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깨드리며 박주영을 발탁했다. 이 과정에서 ‘황제훈련’ 논란이 불거졌고, 축구팬들은 ‘의리 축구’라 비아냥거렸다.
모든 비난을 잠재울 유일한 수단은 월드컵에서의 선전뿐이었다. 하지만 우려대로 대표팀은 최악의 경기력으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슈팅조차 쏘아 올리지 못한 박주영은 끝내 홍 전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외면 받았던 백업멤버들이 오히려 좋은 모습을 보여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결국 홍명보호는 입국장에서 팬들의 엿 세례를 받은데 이어 조별리그 탈락 후 유흥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돼 사면초가에 몰렸다. 결국 한국 축구의 영웅은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자진사퇴의 길을 밟았다.
그래도 한국 축구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쇄신의 칼을 꺼내든 대한축구협회는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선임하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의리’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됐다. 그는 자신의 축구철학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들을 객관적 시선에 의해 선발했고, 기회도 공평하게 주어졌다. 이는 논란의 주인공 박주영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안컵에 나설 최종엔트리가 공개됐고, 새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상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이정협이 공격수 자리에 배치됐고, 월드컵서 해설하던 차두리가 재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홍명보의 아이들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어려움도 있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서 이청용에 이어 구자철이 부상으로 낙마하며 선발 라인업에 큰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은 이 대신 잇몸으로 경기를 치렀고, 27년만의 결승행이라는 현재 진행형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슈틸리케호는 이번 대회 전승+무실점 우승이라는 위업에 도전하려 한다. 아시안컵에서는 지금과 같은 8강 토너먼트제가 도입된 1996년 이후 무실점 및 전승 우승 사례가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라크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우승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발전이 멈춰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계약기간은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다. 단기간에 대표팀을 전혀 다른 팀으로 바꿔놓은 슈틸리케 감독의 마법이 아시안컵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크게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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