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일찌감치 러시아 방문 밝힌 이유 알고 보니...
소원해진 중국 관계 북중 회담으로 돌파 의도
러시아서 남북 정상회담 박 대통령에 공 넘겨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5월 러시아 방문이 거듭 러시아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인테르팍스통신은 29일에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김 제1위원장의 승전 기념행사 참석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5월9일 열리는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은 10년 단위의 ‘꺾어지는 해’의 주요 연도 기념행사로서 여러 외국 정상들이 초청됐다. 그 중에서 김정은의 행사 참석 여부가 연일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우선 러시아가 남북 정상을 동시에 초청함으로써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남북한은 새해를 맞아 쌍방이 공세적으로 대화 제의를 하는 등 대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대통령 소속 통일준비위원회 주체로 대화 제의를 한 직후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언급하면서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 대북전단 살포 중지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남 측의 대화 제의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북한이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자제해오던 대남 비난 공세를 전격 재개하면서 동시에 방러 계획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11월 최룡해 당 비서가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당시부터 북러 간 정상회담 개최는 예견돼왔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북한의 정상외교는 중국을 첫 상대로 삼아온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미지수로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참석하지 않았던 러시아 승전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한다면 북한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의 방러 계획을 밝히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답변을 남한에 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 러시아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를 고심해야 할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는 것 외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수 있는 데다 최근 북한이 다양한 외교적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안 갈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얻을 것은 없다 해도 남한을 자극하고 동시에 중국과 미국을 압박하는 차원에서 빅 이벤트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서방 주요국들의 정상들이 이번 행사에 대거 불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만큼 김정은의 국제무대 데뷔 장소로 러시아가 크게 부담스러운 무대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1980년 전후로 수년간 남북대화 사무국장을 역임한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국제사회로부터 비난 공세를 받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지금이 사고를 쳐서라도 시선을 끌어야하는 시점인 만큼 러시아를 끌어들여 국면탈피를 노리고 있다. 또 러시아 역시 어려운 시점에서 자국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큰 이벤트를 벌여 반사이익을 노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는 모스크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서 외교력을 과시할 수 있다. 또 김정은으로선 폐쇄 국가 지도자에서 벗어나 국제외교와 남북대화 무대에 당당하게 데뷔하는 기회로 삼으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정 국가의 쇼맨십에 정상회담을 끌어들여서도 안 되고, 더구나 지금 남북 정상이 만나도 합의를 이끌어낼 배경이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방러는 의미없어 보인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정상회담이란 본연의 틀로 해야 하는 것으로 이제라도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원칙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도마 위에 오른 데다 소니 픽처스의 해킹 배후로 지목받은 김정은과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조우하거나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를 남북관계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해왔고,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거듭 제의해온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함께 창조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 역시 적지 않다.
이번에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러시아산 가스의 한국 수출을 위한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문제, 나진-하산 구간 철도 개보수로 가속도가 붙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 사업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005년 러시아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고이즈미 일본 총리 등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초청을 받고도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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