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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대표의 국회연설에 '개헌만 29번' 착찹한 서민...


입력 2015.02.06 09:14 수정 2015.02.06 09:37        이슬기 기자

<기자수첩>개헌론자 도의적-정치적 이유있지만 국민 삶과 너무 먼 '거대담론'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4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9번.’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을 언급한 총 횟수다. 지난해 10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표연설 당시(4번)의 7배를 넘는 수치다.

이날 우 원내대표의 대표연설문은 제목부터 ‘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이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해 사회 각 분야의 독점구조를 해결할 근본책으로서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또다시 “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끝맺었다.

우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경제와 민생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개헌이 더 절실하다”며 “정치가 안정되고 제대로 된 후에야 경제도 살아나고 민생도 살아난다. 개헌이야말로 경제 활성화의 필요조건이자 민생안정의 충분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국민 대다수와 여·야 의원 과반수가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또 “어떤 분들은 개헌 논의가 ‘국정 블랙홀’이 될 거라고 염려하지만, 개헌 논의는 이미 성숙될 대로 성숙된 단계다. 지난 10년간 개헌 연구는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며 “이제는 결단만 남아 있다. 개헌을 통해 국가 운영 시스템이 전면 개선되는 ‘국정 화이트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물론, ‘대표적인 개헌론자’로서 우 원내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실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야당 간사를 맡아 활동하는 등 그는 일찍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창해온 인물로 꼽힌다.

당장 이날 연설에서도 사견을 전제로 ‘국민직선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해 개헌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선보이는가 하면, 지난 20일에는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를 확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직접 방문해 현지 정치인 및 전문가들과도 접촉했다.

도의적인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 시기성을 따진 것 역시 맞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으로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불 붙은 데 이어 정의화 국회의장도 “개헌은 활화산에 가까운 휴화산”이라며 필요성과 추진 의지를 분명히 밝혔고,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에 대해서도 “개헌 논의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건 문제”라고 말해 당내 개헌 동력에 힘을 실었다.

아울러 새정치연합 다수의 의원들이 재차 강조한대로 ‘지금이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는 당내 여론과 함께,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까지 “개헌논의를 억지로 막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으로 개헌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을 시기라는 판단도 적절하게 반영된 주장이다.

하지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정당이 ‘국민을 향해 ’ 하는 말이다. 국민은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논란에 이은 연말정산 파동으로 이른바 ‘증세인 듯 증세 아닌’ 말장난 증세를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도 연기 됐으며, 후속대책마저 정부여당 내부에서조차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개탄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개헌 논의는 국민에게 너무 먼, 거대담론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제1야당이라면, 그들이 대변하겠다던 서민·중산층의 오늘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좀 더 시의성있는 내용에 무게를 뒀어야 했다. 순서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지갑열기도 팍팍한 현실에 개헌만 운운하며 ‘내년 총선 때 국민투표’를 들고 나오는 원내대표의 주장을 ‘오늘의 내 삶’과 연결시킬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이래서야 여의도와의 괴리감은 더 커질 뿐이다.

세달도 남지 않은 남은 임기 내 성과를 이루려는 우 원내대표의 조급함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는 5월 신임 원내대표 선거를 앞둔 만큼, 실제 당내에서도 “당장 개헌보다는 2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했다는 성과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는 말도 제기된다.

최근 새정치연합은 공식석상마다 자당을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이라 자평한다. 당권 주자들 역시 “서민 눈물 닦아주는 정당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개헌이라는 여의도발 거대담론으로 눈물을 닦기에 국민의 오늘은 너무 치열하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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