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확인서 작업부터 선정 통보에 항의 전화 무마까지 '고난의 행군'
"힘들어도 보람으로 열중…이산가족 자녀들 소극적인 자세 안타까워"
지난해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우리 정부가 북한 측에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개최될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월 31일 기준,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는 12만9655명. 이 가운데 북녘의 가족을 끝내 보지못하고 세상을 뜬 사람들도 상당수다.
19차례에 걸친 이산가족상봉행사를 개최했지만 6만8303명의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들은 여전히 북녘의 가족들을 만날 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 이에 데일리안은 최초 이산가족상봉 30주년을 맞이해 피붙이와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이산가족상봉 행사 실무를 맡고있는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남북이산가족상봉 신청하셨죠? 방문단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아요? 보이스 피싱 아니야? 당신 누구예요?"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의 방문단으로 선정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다가 겪는 가장 난감한 순간이다.
개인정보 유출, 보이스 피싱 등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다 보니 적십자사 직원들은 지난해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준비하며 이런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상봉행사를 준비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화번호 변경에 주소변경까지 된 이산가족상봉자 선정자의 경우, 적십자사 직원들은 ‘흥신소’ 마냥 사람의 행적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거나 직접 찾아간다. 때로는 자식과 떨어져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상봉 선정자를 찾아내 요양사와 함께 북의 가족을 만나게 하는데에도 일조를 한다.
지난 11일 대한적십자사가 제공한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이산가족 등록현황’(지난달 31일 기준)에 따르면 이산가족 신청인 12만9655명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6만8303명이다.
이 가운데 90세 이상의 이산가족은 8592명(12.6%), 89~80세 2만9130명(42.6%), 79~70세 1만8389명(26.9%), 69~60세 6897명(10.1%), 59세 이하는 5295명(7.8%)이다.
올해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진행되면, 생존자 6만8303명 가운데 고령자, 직계가족 상봉 여부를 먼저 판단해 상봉 후보자를 선정하게 된다.
대한적십자사는 흥신소?…이산가족상봉 선정자 찾아 '삼만리'
이날 ‘데일리안’과 만난 허정구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팀장은 “이산가족상봉단의 후보군 5배수를 특정 기준에 따라 뽑고, 이후 북측으로 보낼 2배수 가량의 생사확인서를 만들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다”면서 “번호나 주소가 불분명한 분들을 찾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상 이산가족상봉 일정이 확정되면 100 가족이 상봉 방문단으로 선정되는데, 과거에는 방문단을 꾸리기 위해 300 가족을 후보군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산가족상봉을 신청해놓고 의사를 철회하는 가족들이 많아 그 후보군을 500가족으로 늘렸다. 그만큼 적십자사 직원들의 손발이 과거보다 분주해졌다.
허 팀장은 ‘데일리안’에 “최근 들어서는 북측으로 보낼 생사확인 의뢰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돌아가시는 어르신도 있고, 후보로 선정되신다고 해도 건강문제로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5배수의 후보군을 뽑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5배수를 간추리고, 다시 2배수를 추려 2~3일 내에 생사확인서를 꾸며야 하니 적십자사 전 직원이 이 기간 동안, 생사확인서 작성 작업에 매달린다. 문제는 연락처가 불분명한 선정자들이다. 연락이 안 되면 선정자가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경찰서나 동사무소 측에 도움을 요청한다.
더욱이 신상정보 노출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십자사 직원이다. 이산가족상봉행사 방문단으로 선정돼셨다”고 전화를 걸면 “적십자사 맞느냐? 못믿겠다”라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짧은 시일 내에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특성상 밤에도 전화를 돌리다보니 이에 대한 오해도 많다.
전화로 연결이 안 되는 선정자들에게는 인근 파출소,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000씨 집에 가서 그 분이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적십자사로 연락하게 해달라”는 식이다. 심지어 경찰이 적십자사 직원의 전화도 못 믿겠다며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허 팀장은 “경찰도 우리를 못 믿겠다는 경우도 있다. 적십자사 직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일을 진행하는 것도 고충 중 하나”라면서 “핸드폰은 수시로 바뀌니까 이를 재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집 전화도 없을 때는 난감하다. 짧은 시간 내에 연락해서 생사확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에는 상봉 선정자가 자식들과 떨어진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어 연락이 힘들었던 사례도 있다. 해당 선정자는 최종 상봉 방문단에까지 이름을 올렸는데, 선정자와 그의 자녀가 떨어져 지내다보니 상봉 진행상황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공지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요양원에 있는 선정자들을 찾아내 상봉 행사에 참석시키는 경우도 상당수다.
허 팀장은 “상봉 대상자들은 고령자들을 우선 뽑는데, 자녀들과 떨어져 요양원에 계신분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그분들에게는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결이 쉽지 않다. 이럴 때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허 팀장은 “요양사들을 각별하게 아끼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요양사를 속초까지 대동할 수 있다고 알려드린다. 오히려 어르신들이 요양사와 함께 가는 것을 편안해 한다”면서 “가족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북에 있는 상봉장소까지 갈 수는 없지만 속초에서 2박3일 동안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TV중계 오해'…"왜 난 안 뽑아줘? 내가 더 늙어보이는구만"
이산가족상봉 중계방송을 본 다른 신청자들의 '불만'이 적십자사로 몰리는 사례도 있다.
그럴 때마다 "고령인 분을 위주로 뽑았습니다"라는 해명을 하지만 "내가 훨씬 늙어보이는구만"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신청자들도 있다. 특히 북한 이산가족 측이 방문단으로 남한 측을 내려왔을 때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북측의 방문단이 남측을 방문하면 남측의 이산가족 당사자를 포함한 5명이 상봉장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봉 당사자의 동생, 손자 등 친지들이 함께 나가니 중계방송으로 보는 다른 상봉 신청자들이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 팀장은 “5명이 만나니까 그 가운데에는 젊은 사람도 끼어있다. TV로 보면 이런 젊은 사람들이 잡힐 때도 있으니까 이를 보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내가 더 늙었다’며 불만 전화를 해오시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리고 요즘 어르신들이 외모가 동안인 분이 많아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대해 이산가족의 자녀들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허 팀장은 “젊은 직원들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통화를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면서 “대부분 고령이시니 잘 듣지 못하신다. 자녀들이 중간에서 적십자사와 상봉 선정자들을 이어주면 좋을 텐데 적극적이지 않다는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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