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대선 국면 타고 ´강연정치´ 시작… 정계 복귀설 또 다시 ´솔솔´
"정신적 지주 역할" "대권도전 의사" 해석 분분… 열-노 "지나친 노욕"
“나라가 위태로울 때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지난 10월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국포럼 주최 조찬 강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남긴 말이다.
이 전 총재는 이날 강연에서 자신의 정계 복귀 여부에 대해 “내 자신이 뭐가 되겠다거나 무슨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가량이 지난 지금 이 전 총재가 전례 없이 ‘왕성한’ 당 내외 활동을 예고하면서 여의도 정가에는 ‘창(昌, 이회창 전 총재)의 귀환이 임박했다’는 설(說)이 파다하다.
내달 5일 당 중앙위 ´한나라 포럼´ 초청 강연… 정계 은퇴 후 첫 당 공식행사 참여
17일 한나라당에 따르면, 이 전 총재는 다음달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당 중앙위원회 ‘한나라 포럼’ 초청 강연에 나설 계획.
지난 2003년 정계 은퇴를 공식 선언한 이 전 총재가 당 공식행사에서 강연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이 전 총재는 오는 20일 경남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한반도의 위치와 우리의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한국지성인단체총연합회 초청 강연을 진행하며, 30일에는 연세대학교 강연도 예정돼 있다.
특히 이 전 총재는 최근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단독행사 논란 등과 관련, 자유시민연대,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227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여한 ‘한미연합사 해체반대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공동대표 김성은 외 16인)의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재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정계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15일 광주매일신문 보도를 통해 “이 전 총재가 곧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설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측근 모임에서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이 전 총재가 정권교체를 위한 ‘병풍역할’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정계에 복귀할 것으로 관측된다”며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로 나뉜 당내 세력분포 속에서 ‘킹 메이커’를 자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전 총재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창’이 조만간 대권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시기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킹 메이커´ ´대권 출마´ 등 정계 복귀설 솔솔… 홍문표 "당내에 뜻 같이 하는 분 많다"
이와 관련, 이 전 총재의 팬클럽 격인 ‘창사랑’의 조춘호 대표는 17일 오전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 “이 전 총재는 현 정권의 실정, 그리고 정치권에 대해 답답함과 갈증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한 사발의 시원한 물과 같다”면서 “다른 대선 예비후보자들과 비교할 때 경륜과 경력, 정치적 이념 등이 훨씬 앞서 있고 더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올바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특히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 시기에 대해 "아마 내년 초쯤 되면 아마 직접 말씀하실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총재 시절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을 지냈으며 이 전 총재의 고향 충남 홍성‧예산이 지역구인 홍문표 의원도 같은 날 오전 SBS라디오 <김신명숙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한미관계 등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는 상황에서 두 번이나 집권하지 못한 정당(한나라당)이 또 한번 기회를 놓친다면 존립이 어렵게 된다. 이 전 총재가 국민과 당을 위해 본격적으로 일을 해주실 때가 왔다”고 그의 정계 복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홍 의원은 특히 “아직 민감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그렇지만 (당내에도) 이심전심으로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에 뜻을 같이할 분이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창의 귀환’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 전 총재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각각 1100만 표 이상을 얻은 그의 ‘정치력’ 때문이다.
40%대의 당 지지도와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차기 대권주자 ‘빅3’를 보유한 한나라당이지만, 대선후보 경선 등을 거치며 주자간 ‘잠재된 갈등’이 표면화될 경우 내년 대선에서 ‘낙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창(昌), 정계 복귀설´과 당 내외 역학구도 변화의 상관관계는?
또 그동안 ‘창의 정계 복귀설’이 언론에 부각된 시점이 선거 등 당 내외 역학구도 변화와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음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지난 2004년 ‘탄핵 역풍’ 속에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전 대표는 당 대표 취임 후 가진 1, 2차 당직 개편에서 이 전 총재의 측근 인사들을 당 대표 비서실장(진영, 유승민)과 사무총장직(김무성)에 기용, ‘당권(黨權)’ 장악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크고 작은 당 내외 선거를 치르면서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이 측근 인사 등을 중심으로 ´솔솔´ 흘러나왔다.
지난해 4.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는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 측 자문그룹(북악포럼)에서 활동한 공성진 의원에 의해 ‘창의 복귀’ 가능성이 한 차례 거론됐다.
또 이를 즈음해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이병기 전 정치특보도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돌아왔으며, 이 전 총재는 ‘북악포럼’ 멤버들과 정계 은퇴 선언 이후 최초로 공식적인 만남을 갖기도 하는 등 이 전 총재의 복귀설이 ´탄력´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병풍(兵風)’ ‘기양건설’ ‘설훈씨 20만불 수수’ 등 3대 정치공작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이 공론화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정치특보를 지낸 바 있는 강재섭 당시 원내대표(현 대표최고위원)는 "이 전 총재는 정계 복귀에 뜻이 없다"고 못 박았으며, 인재영입위원장이던 김형오 의원(현 원내대표), 전여옥 당시 대변인 등도 이 전 총재의 복귀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후 7월 ‘안기부 X-파일 도청 파문’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던 이 전 총재의 복귀설은 8월말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를 계기로 다시금 불이 붙는다.
홍문표 의원 등이 이 전 총재의 ‘대선 역할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
더구나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정국과 맞물리면서 당의 안정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서 이 전 총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대두됐다.
아울러 10월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참석을 기점으로 대외 활동을 폭을 넓혀온 이 전 총재는 10.26재보선에서 대구 동을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을 직접 지원했으며, 올 들어서도 5.31지방선거 기간 후보자 선거사무소 격려 방문 등 이 전 총재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 송파갑에 공천을 신청한 이흥주 전 특보가 최종 공천자 명단에서 밀려나 이 전 총재의 ‘약발’이 다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 전 총재 측도 내심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인지 7.11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강재섭 대표는 신임 인사차 이 전 총재를 예방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당원들 마음속의 대통령”이라고 이 전 총재를 한껏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이번 전대가 대권주자들의 대리전처럼 된 것은 아주 잘못”이라며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최근 당내 차기 대권주자 ´빅3´의 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창(昌)의 귀환´이 다시금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킹´ 또는 ´킹 메이커´보다 아직은 ´정신적 지주´(?)… 과거 측근 인사들 "할 말 없다"
이처럼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볼 때 지금까지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 ´당내 역할론´이 나온 배경은 혼란스런 당내 상황을 수습키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동시에 본격적인 대선 국면을 앞둔 현재 한나라당의 상황도 "겉으론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나, 절대로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님을 반증해주는 것"이라는 게 또다른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창사랑´을 비롯한 이 전 총재의 ´열혈 지지자´들은 당 내외 상황과 관계 없이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고, 또 그동안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이 전 총재의 발언 수위도 점점 더 높아져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아울러 일각의 주장처럼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 손 전 지사 등이 향후 대선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면 이 전 총재가 다시 마운드 위에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직접적인 ´킹´ 또는 ´킹 메이커´로서라기보다는 한나라당의 ´정신적 지주´, 혹은 강 대표의 표현처럼 ´마음 속의 대통령´으로서 이 전 총재의 역할이 더 커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이 전 총재 측부터 ‘정계 복귀’ 관련 보도에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다,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 측은 물론 과거 이 전 총재의 측근으로 불리던 당내 인사들마저도 "할 말이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등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또 한 관계자의 말처럼 "과거 이회창계라 불리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가 다 다른 대권주자 캠프를 돕고 있어" 섣불리 입장을 표명하기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소장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자꾸 과거 사람들을 들먹거리니까 ´도로 한나라당´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창(昌)의 복귀설´에 대해 못마땅함을 나타냈다.
열린-민노, ´창(昌) 복귀론´에 노골적 반발… 정치적 영향력 여전히 ´유효´
그러나 비록 ´최전방´에서 물러나 있다고는 하나 이 전 총재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유효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이 이 전 총재의 복귀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열린당 우상호 대변인은 17일 “이미 10년에 걸쳐 2번씩이나 국민의 평가를 받은 분이 높은 지위의 대권후보가 2명씩이나 있는 당에 복귀하겠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지나친 노욕(老慾)이 아니냐”고 강력 비난했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도 당초 이날 예정돼 있다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의 회동과 더불어 이 전 총재의 잇단 강연 행보를 언급하며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자 정치판 주변을 서성거리는 흘러간 정치인의 모습은 국민에게 씁쓸함만을 안겨줄 것이다. 구태 정치인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길은 지역주의와 구태라는 옛 정치의 흔적과 함께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의 최근 행보롤 놓고 "구체적인 정계 복귀 시기를 저울질하기 위해 여론의 동향을 살펴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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