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성실맨’ 레더 살아야 포웰도 산다
전성기 지났지만 골밑장악-수비헌신 큰 공로
포웰 체력비축 일등공신..챔피언 도전 꿈 이룰까
올해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돌풍의 팀'으로 부상한 인천 전자랜드의 최고 스타는 리카르도 포웰(32)이다.
에이스이자 외국인 선수로는 드물게 주장까지 맡고 있는 포웰의 맹활약과 승부에 대한 열정은 농구팬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자랜드에는 포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주는 포웰의 놀라운 활약 이면에는 승부처까지 포웰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면서 체력 비축은 물론 때로는 포웰이 하지 못하는 골밑 장악과 수비에서 헌신하는 또 다른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34)의 공로가 있다.
레더는 사실 포웰 못지않게 농구 팬들에게 친숙한 외국인 선수다. 전성기였던 서울 삼성 시절에는 압도적인 골밑 장악력을 바탕으로 득점왕과 리바운드왕을 독식하는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레더의 행보는 순탄하지 못했다. 부상 이후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했고, 악동 이미지로 여러 팀을 전전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 시즌 레더가 전자랜드를 통해 KBL에 컴백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하지만 레더와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주장 포웰이 레더의 영입을 보증하고 나섰고, 유도훈 감독 역시 달리진 모습으로 헌신하겠다는 레더의 약속을 믿고 팀에 받아들였다.
시즌 초반 레더가 팀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도 실패한 영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은 9연패를 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레더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시즌 중반 이후 정상궤도를 회복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유도훈 감독은 플레이오프 들어 철저하게 포웰과 레더의 로테이션을 통한 분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1·4쿼터에는 결정력이 좋은 포웰을 투입하고, 2·3쿼터는 레더를 활용해 골밑과 수비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높이가 좋은 SK와 동부를 잇달아 상대해야 했던 전자랜드로서는 레더가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텨야 포웰의 체력을 비축할 수 있고, 약점인 높이의 열세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레더는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출전하거나 기록적으로 화려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플레이오프 들어 고비마다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자신보다 신장이 큰 커트니 심스나 데이비드 사이먼 같은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수비로 골밑을 지켜내는 한편, 공격에서는 정교한 중거리슛과 끊임없는 스크린플레이, 속공가담 등으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블루 워커로 거듭났다.
레더의 활약은 1승 후 2연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동부와의 4차전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이날 예상을 깨고 선발 출전한 레더는 초반부터 골밑에서 수비와 리바운드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동부가 자랑하는 높이를 무력화시키는데 기여했다.
4쿼터에는 다시 가벼운 부상으로 벤치로 물러난 포웰을 대신해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공격 리바운드 후 바스켓 카운트를 올리며 분위기를 전자랜드 쪽으로 가져왔다. 레더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유도훈 감독은 포웰의 출장시간을 21분 안으로 조절할 수 있었고, 4쿼터 막판에는 다시 포웰을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
포웰에 이어 레더까지 살아난 것은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노리는 전자랜드에게 큰 힘이 된다. 레더는 KBL에서 삼성-KCC를 거치며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우승 경력은 아직 없다. 올 시즌 악동 이미지를 벗고 성실맨으로 거듭난 레더가 전자랜드에서 다시 한 번 챔피언 도전의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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