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했다고 끝나지 않는 악몽, 탈북아동의 현주소①>
탈북자도,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아이들의 눈물,,,
탈북청소년의 남한 내 존재는 이들의 출생 혹은 입국 시의 상황, 또는 남한 정착 후 가정의 해체여부 등으로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19세 이하의 탈북청소년은 4461명이다. 법적으로 24세까지가 탈북청소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들은 무연고·실질적 무연고 탈북청소년, 제3국에서 태어난 비보호탈북청소년 등으로 나뉘어 각각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에 '데일리안'은 이들의 남한정착 실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을 재조명해 '통일의 미래'인 탈북청소년들의 바람직한 남한 정착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이곳 사람들이 날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탈북자'.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는데, 도착해보니 커다란 현수막에 '탈북청소년 역사탐방'이라고 써있었다. "선생님, 우리가 왜 탈북 청소년이에요? 우리 중국 청소년인데요?"라고 몇 번이나 물었다. "어머니 고향이 어디지? 부모님 두분 중 한분이라도 북에서 오셨으면 너도 탈북 청소년이 되는거란다." 조용히 설명하시며 안아주시는 선생님 품에서 생각했다. 나는 어느나라 사람일까.
지난 27일 '데일리안'과 만난 16살 현애(여·가명)는 4년 전 한국에 왔다. 2004년 탈북해 중국으로 간 엄마는 중국인 아빠를 만나 현애를 출산한 뒤, 먼저 한국에 들어가 3년간 일하며 정착하고 여행비자로 아빠를 초청했다. 아빠 역시 3년간 한국에서 터를 닦고 여행비자를 통해 2010년 현애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딸의 국적도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처음 몇 달은 지역 공부방에 다녔으나 잠시뿐이었다. 16년간 중국인으로 살아온 현애에게 생전 처음 들어본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학 수업은 그 자체가 곤욕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북한에서 온 만큼, 한국어로 소통하면서 자기들끼리 금방 친해졌다. 성적이 좋다며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다. 반면 수학은커녕 한국어도 모르는 현애는 점차 뒤로 밀려났고, 친구들과 크게 싸운 어느 날, 아빠 손을 잡고 공부방을 나왔다.
정부에서 탈북 아동들에게 한국어 등 교육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지만, 정작 현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북한이 아닌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는 현애를 여전히 탈북자라 불렀다. 북한 출신의 어머니를 만나 중국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온 현애는 중국사람도, 북한사람도, 한국사람도 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입소문으로 대안학교를 알게된 부모는 곧바로 현애를 입학시켰다. 학생 48명 중 90%가 현애처럼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그나마 현애처럼 아버지와 함께 내려온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어머니가 탈북 도중 악덕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시골로 팔려가 강제 결혼을 하고, 폭력과 강압 속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몰래 탈출한 경우가 상당수다.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 간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브로커를 시켜 아이를 훔쳐오다시피 데려온다.
이런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와 수학 및 예체능 등을 가르쳐 제도권 학교로 입학시키는 곳이 '겨레얼 학교'다. 당초 미인가 대안학교였으나 서울시청 측으로부터 비영리 민간단체 형식으로 인정을 받고 지역 교회나 단체로부터 근근이 후원을 받고 있다.
아울러 함께 운영하는 겨레얼 지역아동센터 역시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으로부터 소정의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이 역시 교육과 보육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이 학교 학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출생 아이들은 탈북자로 인정이 안돼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순영옥 겨레얼학교 교장은 지난 27일 '데일리안에' “국가가 중국에서 태어나서 넘어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탈북 청소년과 같은 도움과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순 교장은 이어 “똑같이 탈북민의 아이인데, 누구는 북한에서 태어났다고 지원하고 누구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아무 지원도 없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중도입국 청소년은 자신을 아예 중국인으로 알고 중국말만 하며 살아온 애들이다. 외국인과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언어교육 등 지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부모 중 한 사람이 미국인이면 자녀 역시 자국민으로 인정해주는 미국의 사례를 든 뒤, “실제 탈북한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아이는 중도입국 청소년이고, 그 어머니가 남한에 들어와 둘째를 낳으면 그 애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여기에 북한에서 여행비자로 들여온 애까지 세명이 함께 사는 일도 있다”며 “한 집에 탈북자, 한국인, 중도입국 청소년이 다 있는 거다. 얼마나 기가 막힌가”라고 토로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탈북 청소년의 개념에 대한 모호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중도 입국 청소년을 탈북 청소년으로 인정할 경우, 북한 출신 어머니가 남한으로 와서 새로운 가정을 이룬 뒤 낳은 아이 역시 탈북 청소년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문제다. 어머니가 북한 출신이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을 해줘야 하는지를 두고 이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순 교장은 이같은 문제점을 설명하며 “하지만 이 아이들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똑같이 탈북 청소년으로 인정해주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우는 거다”라며 “얘들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 아닌가”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인터뷰 말미에 현애 또래의 여학생인 미선이(16.가명) 역시 긴장이 풀렸는지 입을 열었다. 한쪽으로 머리핀을 꽂은 채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휴대전화를 꼭 쥔 손. 영락없는 ‘한국 중학생’이었다.
“여긴 저를 이해해주는 친구도 있고, 정말 마음이 통하면 다른 데서 왔다해도 ‘아 그랬구나’ 하면서 받아주니까 좋아요. 근데 학교 가면 누구는 저한테 탈북자라고 하고, 누구는 다문화라고 하고. 그게 좀...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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