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환이 언제?" "정태호는 누구?" "정동영은 왜?"
<4.29 재보선 현장을 가다 - 관악을>27년만의 이변?
지역주민들 반신반의 속 "그래도 개봉하기까진 몰라"
‘관악산 올라가는 사람들 열에 여덟은 호남 사람’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 동네에 온지 28년. 전남 구례 출신의 조모 씨(남·69)는 일흔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4.29 재·보궐선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빛에 힘이 실렸다.
선거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뜸 “새누리당이 진짜 될 수도 있다. 30년만인가, 이번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이렇게까지 야당이 난립하면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이길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른바 ‘서울의 광주’로 불리며 27년간 야당의 텃밭이었던 관악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옛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야권 후보들이 대거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여당의 불모지였던 이곳에서도 이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조 씨가 이변 가능성을 외면치 못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재보궐이 그렇지. 사람들이 거의 선거하러 안오니까”라며 “원래부터 잘 안하고, 나이든 사람들만 투표하러 오지, 젊은 사람들이 오겠나”라고 되물었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선거는 사실상 ‘조직싸움’인 데다, 야권의 후보난립도 극심하다며 “새누리가 이길지 모른다는 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아울러 조 씨가 관악에 자리를 잡은 후 알게된 광주 출신 고 씨와 보성 출신 김 씨, 여수 출신 장 씨도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오신환 후보 철저한 '관악 이슈 집중' 힘쏟기
선거를 1주일 앞둔 지난 22일, ‘성완종 사태’와 관련해 새누리당에서는 참여정부 당시 성 전 회장의 두차례 특별사면 문제를 거론하며 연일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신대방역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던 오신환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의 입에서는 ‘특별사면’이나 ‘문재인’ 또는 ‘참여정부’와 같은 단어를 한 차례도 들을 수 없었다.
성완종 사태로 인한 새누리당의 지지도 하락을 묻는 질문에, 퇴근길 유세 현장을 지나치던 자영업자 이모 씨(남·58)는 “뭐 야당도 똑같이 받아먹었다는 거 아닌가”라며 “선거때마다 ‘정부심판’ 하겠다는데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씨는 몇 년전 관악구 신사동에 네 식구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런 만큼 ‘정부심판’ 등의 정치적 이슈보다 지역발전에 실질적으로 힘을 쓰는 후보를 눈여겨보겠다는 심산이다. 정치성향에 대해선 “그런 거 없다. 정부가 거짓말이나 좀 안하면 좋겠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도 “솔직히 1번을 찍어본 적은 없지만, 막판에 오니 민주당은 또 대통령 죽이기만 주구장창이다. 그런 것 자체가 지겹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오신환 캠프 측에서는 선거 운동 내내 ‘지역 이슈에만 집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찍이 단일후보를 내고 새정치연합보다 약 2주정도 전열을 일찍 갖춘 만큼, 통진당 해산 등 정치적 이슈를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후보자 자신부터 “관악 이슈에만 포커스를 맞추자”는 입장이 워낙 강했다는 것이다.
캠프 관계자는 “여당한테 어려운 지역이란걸 우리도 잘 알지만, 우리는 ‘관악’이라는 한 노선만 계속 지켜가고 있고 그 진정성이 조금씩 지역민들에게 통하고 있다”며 “최근에도 우리한테 오셔서 ‘나는 항상 야당 찍었는데 이번에는 1번을 찍으려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꽤 많다. 연세 있으시고 이 지역에 계속 살 분들은 솔직히 중앙이슈보다 지역문제에 더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새정치 후보, 누군지 모른다”지만… ‘그래도 2번’
“김희철은 후보도 아니라고? 난 지금 알았다.”
미성동 주민인 직장인 현모 씨(여·29)는 ‘후보군을 다 파악했느냐’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근데 김희철은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난곡사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김희철 씨를) 자주 봤다. 맨날 거기만 오는가보다”라며 “나는 당연히 김희철이 새정치연합인가 아무튼 그 당 후보인줄 알았다. 얼굴(플래카드)도 산만한 걸 예전부터 걸어두고 난곡에서 하도 맨날 보여서...”라고 의아해 했다.
‘미워도 2번’이라는 야권의 텃밭이지만, 정태호 새정치연합 후보의 낮은 인지도는 아직도 쉽지 않은 벽인 것은 분명해보였다.
신림동에 거주하며 개인사업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남·35)도 “김희철은 어떻게 된건가”라고 물은 뒤, 경선에서 패배했다는 설명을 듣고선 “그래도 구청장까지 한 사람인데, 동네 사람들 중에 김희철이 당연히 후보인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태호는 이름도 처음 들었고, 뭐하던 사람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앞서 만난 호남출신 조 씨 역시 “정태호는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른다. 그래도 김희철은 구청장도 하고 자주 보여서 여론에서는 김희철이 그래도 정태호보다 나았는데”라며 “(정태호는) 젊은사람이 이제야 선거에 뛰어들어서 아직 얼굴도 모르고, 지역에서 뭐 일할만한 힘도 약하고, 찍어줘도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조 씨는 “투표라는 게 여론보다도 조직이라는 것을 무시 못한다. 정태호 그 사람 하나만 봐서는 절대 20~30%대 못 올라가지. 근데 지금 여론조사 그렇게 올라가는 것을 좀 보라”며 “못한다 못한다 아무리 때려싸도 그렇다고 새누리당은 진짜 아니지 않나. 찍을만한 사람도 없고, 거기서 거기인데 결국엔 당보고 찍는 게 크다”라고 내다봤다.
현재 성완종 사태로 여야 두 세력이 각각 치열하게 결집하는 상황인 만큼, 후보 개인의 경쟁력보다는 당 지지세에 의해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설사 검찰 수사가 야권으로 확대된다해도,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의 표 확장성은 ‘관악’이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 정태호 캠프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 씨 역시 “그래도 결국 투표소 가면 2번 찍어줄 가능성이 많다”며 “동네 성향이란 걸 무시 못한다”고 말했다.
‘불금’이 한창이던 지난 17일 저녁, 난곡 세이브마트 앞에는 200여명의 시민들이 마트 앞 도로변을 가득 채웠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신환 후보 지원차 동네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무성 한번 보자”며 모인 사람들이었다. 인천 강화에서 출발한 김 대표의 차가 교통난을 겪느라 당초 예정된 시각보다 1시간이나 지연됐지만, 돌아서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인파 속에서 미성동 주민 임모 씨(여·50대)는 “여기있는 사람들 다 새누리 찍어주는 게 아니다”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임 씨는 이어 “지금 이렇게 김무성 보러 다 몰려왔지만, 정작 투표할 땐 2번”이라며 “이 동네가 그렇다. 관악산 가는 사람 10명 중 8명 붙잡고 물어보라. 호남 사람이지”라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도 “여긴 그냥 서울의 광주”라고 거들었다.
일단 정태호 후보 캠프에서는 ‘당연히’ 이기되, 근소한 차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악에서 새누리당이 가져갈 수 있는 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 전 회장의 참여정부 당시 두차례 특별사면과 관련, 새누리당의 공세에 대해 문재인 대표가 “더러운 돈 받지 않았다”며 정면돌파에 나선 데 이어, 최근 새누리당 내 진실공방이 불거지면서 국면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다만, 캠프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야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성완종 사태에 대해 ‘여야 모두 똑같다’는 방향으로 여론이 기울어 정치권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경우, 투표율 자체가 더 떨어지거나 정동영 무소속 후보에게로 표 이탈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관악을이 아니라 관악헬” 후보 난립에 '앵그리 주민'
최근 문재인 대표의 관악 유세 때마다 수행 역할을 자처했던 이행자 시의원 등 새정치연합 일부 세력이 새정치연합을 탈당, 국민모임 소속의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또한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정 후보의 지지율이 오름세를 보이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속앓이를 하는 모습이다.
MBN이 지난 2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4·29 재보선 지역 19세 이상 유권자 2000여 명(지역별 500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울 관악을 지역에서 여야 후보들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33.9%의 지지로 가장 앞섰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야권의 결집이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28.1%의 지지를 얻은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정동영 무소속 후보가 29.8%로 근소하게 앞섰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4.4%의 표본오차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정 후보측은 상당히 힘을 얻는 모양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관악 민심은 다소 차가웠다.
마트를 운영하는 60대 초반의 조모 씨는 정 후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왔다갔다 그런 것만 아니면 그래도 정동영 그게 그 중에 제일 똑똑하고 인물은 제일 나은 사람인데”라며 “근데 어쩌겠나. '철새'는 좀 그렇거든. 정치인들이 원래 그렇지만 너무 식상하다”고 혀를 찼다.
특히 무소속 후보의 난립이 관악 주민들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송모 씨(남.27)는 매일 출·퇴근길 선거용 대형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관악을이 아니고 관악헬”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후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관악에는 현재 신종열 공화당 후보, 송광호 무소속 후보, 보수 진영 대표로 변희재 무소속 후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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