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망하게 한 엘리엇 이번엔 삼성 흔들기
<이강미의 재계산책>국제적 투기꾼의 삼성물산 합병반대
정부, 국내기업 경영권 방어 위한 대응책 마련 나서야
국제적 투기꾼으로 악명높은 외국계 헤지펀드의 난데없는 삼성 공격에 삼성은 물론 재계 안팎에 비상이 걸렸다.
다름아닌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는 미국계 '벌처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삼성의 경영권 흔들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해 3대 주주로 올라선 엘리엇은 ‘주주권익’을 앞세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반대와 향후 합병작업때 의결권을 적극 행사할 것을 예고했다.
문제는 엘리엇은 단기 수익성만을 높인 뒤 매매차액을 먹고 튀는 이른바 ‘먹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더욱이 엘리엇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을 노렸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만에 하나, 국가경제에 심각한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안팎에서는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국내기업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엘리엇은 세계 10대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에 꼽히는 세력이다. 부실 국채를 인수한 뒤 남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펼쳐 큰 이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를 디볼트사태에 빠뜨린 것이다.
이들은 점잖게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한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ment)’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알박기’식 투기에 가깝다. 국내에서도 칼 아이칸과 소버린펀드가 과거에 악명을 떨쳤다. 만약 소버린과 아이칸이 ‘먹튀’를 넘어 SK와 KT&G의 경영권까지 빼앗았다면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헤지펀드의 본질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꾼’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사냥감 삼아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한 뒤 주가가 고점에 이르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먹튀’가 기본적인 속성이다. 당하는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고, 이는 막대한 국부유출로 이어진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하마다 가즈유키는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위험을 파헤친 ‘헤지펀드’란 책의 부제에 ‘세기말의 요괴’라고 붙인 이유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엘리엇이 외국계 투자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을 경우이다. 실제 삼성물산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삼성SDI(7.18%), 삼성화재(4.65%) 등을 합쳐 13.99%에 불과하다. 단일 최대주주로는 국민연금(9.98%)이 1위다.
반면 외국인 지분은 33%를 넘어선다. 특히 엘리엇이 지난 4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자 외국인의 삼성물산 보유 비중이 하루 새 32.11%에서 33.08%로 높아졌다. 엘리엇의 지분은 7.12%로 단일 주주로는 3위에 불과하지만 외국계 우호지분을 규합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상법상 5% 이상 주주로서 경영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할 경우 이사·감사의 인사권, 자본금 및 정관 변경, 합병이나 주식의 교환·이전, 영업양수도, 자산처분·양도, 주요 계약의 체결, 해산 등 회사의 주요한 경영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 및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따라 국제적 투기꾼인 헤지펀드로부터 국내 기업들을 보호하려면 기업경영권 보호장치가 절실하다.
시장에서는 수년 전부터 헤지펀드의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황금주' 등의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활용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총수일가만 보호한다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억지주장에 번번이 흐지부지돼 왔다.
하지만 현재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업들이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기업경영권 보호수단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 ‘우물 안 개구리’식 논리에 빠져 언제까지 국내 기업들을 외국 투기꾼들의 꽃놀이판에 내몰 작정인가. 그 어느때보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수출길을 모색해야 할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기업역량을 낭비하게 해서는 안된다.
금융당국도 이 펀드가 한국 대표 기업을 상대로 ‘주주 행동주의’ 미명 아래 내부자거래 등의 불법행위를 하려는 의향은 없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울러 일반 투자자들도 헤지펀드가 공격한 기업의 주가가 ‘테마주 효과’로 반짝 상승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투’를 잡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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