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법이란 무엇인가?…영화 '소수의견'
'용산참사' 모티브로 한 동명소설 원작
윤계상·유해진 주연…김성제 감독 연출
젊은 국선 변호사가 고개를 떨군 한 수감자에게 묻는다. "국선 변호사를 원합니까?" 수감자는 피를 토하듯 말한다. "전 아들 구하려고 한 죄밖에 없습니다. 무죄를 원합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구역. 주민 박재호(이경영)는 철거를 강행하는 경찰과 대치한다. 불길이 치솟고, 쇠 파이프와 각목이 날아든다.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박재호의 열여섯 살 난 아들 박신우가 누군가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다. 아들과 같은 자리에 있던 스무 살 김희택 의경도 숨진 채 실려 나간다.
박재호는 김 의경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되고, 경찰은 박재호의 아들 박신우를 죽인 사람은 철거 용역 업체 직원이라고 발표한다. 이 사건은 대형 법무법인을 거쳐 국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에게 이관된다.
당시 철거 현장에 있었던 공수경 기자(김옥빈)는 이 사건이 꺼림칙하다고 느껴 윤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윤 변호사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후 교도소에서 박재호를 만난 윤 변호사는 박재호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아들 신우를 죽인 사람은 용역 직원이 아닌 경찰이고, 자신은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는 것.
윤 변호사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고, 선배인 이혼전문 변호사 대석(유해진)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박재호의 아들을 죽인 국가에 잘못을 인정받기 위해 국민참여재판 및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이라는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힘없는 두 국선 변호사의 상대는 대한민국 검찰이다. 그런데 이 사건, 생각보다 위험하다. 살아있는 권력과 보이지 않은 손이 두 사람을 휘감는다. 검은 그림자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때마다 거대한 벽이 진원과 대석을 가로막는다. 도대체 배후는 누구고,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영화 '소수의견'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두 젊은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과 검찰의 진실공방을 담은 법정 드라마다.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지난 2013년 촬영을 마쳤지만 중간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급사가 변경되면서 2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이제야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김 감독은 "용산참사뿐만 아니라 요즘 한국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며 "여당·야당·검사·변호사·시민단체 등 비극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 차이와 야심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김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박재호 사건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수를 쓴다. 야당 국회의원은 정치적 잇속이 먼저고, 경찰과 검찰은 진실을 가리기에만 바쁘다. 정의의 편이라고 나서는 이들의 이면에는 욕망이 숨어 있다.
영화는 '유일한 희망'인 젊은 변호사가 이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촘촘하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중반부를 넘어서부터 치열한 법정 공방이 빠르게 이어지며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중간중간 재치 넘치는 대사를 넣어 무거운 이야기에 적절한 양념을 뿌린 세련된 연출력도 돋보인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 권력, 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검사가 뱉은 "족보도 없는 새파란 국선이 검사한테 기어올라?", "윤진원 뭐든 뒤져서 만들어내"등의 대사와 "나라면 절대 안 멈췄을 것이다. 누군가 박살 날 때까지 끝까지 갔을 것이다"라는 윤 변호사의 대사가 대비돼 머릿속을 맴돈다.
배우들의 연기가 꽤 훌륭하다. 윤 변호사로 분한 윤계상은 초반 다소 딱딱한 연기를 펼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에 잘 녹아든 느낌이다. 최근 스크린에서 활약 중인 유해진은 충무로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연기를 선보인다. 어색할 것 같았던 윤계상과 유해진의 케미스트리(배우 간 어울림)는 기대 이상이다.
검찰청 에이스 홍재덕 부장 검사로 분한 김의성의 연기가 압권이다. 권력의 충실한 파수꾼 역을 맡은 그는 눈빛 하나, 표정 하나만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존재감이 상당하다. 말 한마디에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박재호 역의 이경영, 판사 역의 권해효의 연기력 또한 말할 것도 없이 탄탄하다. 전체적으로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홍 검사는 윤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가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일까. 국가는 국민에게 희생과 봉사를 하고 있는가?"
6월 24일 개봉. 127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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