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도 내편이면 모두 다 사랑하리~문재인의 정청래 사랑
<기자수첩>정청래 구하기가 새정치의 혁신안?
문재인은 어물쩍 심판원은 침묵 혁신위는 '아몰라'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의 첫 발을 뗀 14일, 가장 먼저 살려낸 건 놀랍게도 ‘막말 정치’였다. 당 혁신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혁신안에 법적 권위를 부여코자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기 위해 소집한 당무위원회의에서다.
이날 당 윤리심판원 간사인 민홍철 의원은 회의에 앞서 지난 5월 ‘공갈 사퇴’ 발언으로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을 선고받은 정청래 의원의 징계 결과를 보고했다. 이 때 갑자기 이용득 최고위원이 손을 들고 “정 의원의 징계수위가 너무 과하다”며 징계 경감을 위한 재심사 요구안을 상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유승희 최고위원과 신계륜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신 의원은 더 나아가 “국회의원은 말로 하는 일인데, 그 말 한마디로 이렇게까지 징계하는 것은 심하다. 발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면 안 된다”고 정 의원의 ‘막말’을 적극 두둔했다. 아울러 정 의원의 징계 감경이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즉각 반박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박범계 의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된다. 구의원도 이런 식으로는 안한다”며 “사전에 상정하기로 한 안건도 아닌데, 이렇게 기습적으로 갑자기 밀어넣는 게 맞느냐”고 반박했다. 또다른 참석자들은 “생각이 있는 건가”라고 황당함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또’ 굴복했다. 이날 당무위는 혁신안 의결을 위해 소집된 자리였다. 당장 문 대표 자신도 회의 전 모두발언을 통해 “혁신위가 지금까지 제안한 당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하기 위해 오늘 당무위를 열게 됐다”며 개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 터였다. 그럼에도 일부 위원들의 상정 요구에 부딪친 문 대표는 재심 요구안을 첫 번째 안건으로 상정, 37명의 참석자 중 19명이 거수로 찬성하면서 결국 재재심이 결정됐다.
즉, 이날 37명 중 과반에 한 명 못 미치는 18명은 표결 시 손을 들지 않았다. 박범계 의원의 경우, “사전에 상정하기로 한 안건도 아닌데, 이렇게 기습적으로 밀어넣어서 표결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구의원도 이렇게는 안한다”며 절차적 문제를 요목조목 따지고 나섰다.
박 의원뿐 아니라 민홍철 의원 등도 재심까지 걸친 윤리심판원의 결정을 당무위가 한번에 뒤집어 버리는 상황을 지적했고, 윤리심판원의 권위 실추 문제도 분명히 짚었다. 아울러 당이 ‘총·대선 승리’를 목표로 혁신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이를 예의주시하는 국민 정서와는 완전히 괴리된 결정이란 우려도 쏟아졌다.
당대표는 당무위에서 의결 상정 권한을 갖는다. 대표가 회의 현장에서 안건의 상정 여부를 판단할만한 결단력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문 대표가 법적 절차와 ‘당 혁신’이라는 당무위 소집 목적에 근거해 상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들, 과반에 가까운 위원들로부터 힘을 얻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문 대표의 리더십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리심판원 역시 침묵했다. 물론 안병욱 원장이 일부 언론과의 전화통화로 “사전에 공론화 과정이나 미리 공고된 바도 없고 내부에서 여론화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 위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라고 말했고, 민 의원도 “윤리심판원의 독립성, 공정성, 엄정성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모두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 수준의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을 뿐, 윤리심판원 차원에서는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
게다가 혁신위의 태도는 더 무책임했다. 혁신위 측 핵심 관계자는 이번 ‘재심 청구 사태’에 대해 “혁신위의 입장이라고 낼 만한 것은 없다. 그건 혁신위가 뭐라고 할 부분이 아니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무위가 윤리심판원의 결정을 한번에 뒤엎고, 윤리심판원은 침묵하며, 당무위 소집의 본 목적이었던 혁신위는 외면했다. 과연 혁신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5월 혁신위 출범 당시 “국민 눈높이에서 당을 완전히 바꾸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특히 문 대표는 지난달 안 원장을 새롭게 맞아들이며 “무책임한 말과 행동이 우리당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윤리심판원이 엄정한 잣대로 중심을 확실히 잡아달라”고 강조했고, 안 원장 역시 “살얼음판을 걸으며 국민의 신뢰를 향해 나가는데, 한두 명의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얼음판이 깨질 위험에 처했다”며 엄중 처벌을 약속했다.
그리고 당헌 개정으로써 혁신의 새 숨을 불어넣겠다던 첫 날, 무기력한 대표와 무심한 혁신위가 윤리심판원을 통해 스스로 사형 선고 내렸던 ‘망령’을 다시 불러냈다. 혁신은커녕 그야말로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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