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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조선시대 선박’이 사상 최초 세상에 나홨다


입력 2015.08.26 12:46 수정 2015.08.26 12:48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태안 마도 4호선에서 목간, 분청사기 등 출수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22일부터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에서, 조선시대 선박인 마도4호선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중간 조사결과 ‘광흥창’이 적힌 목간, ‘내섬’이 적힌 분청사기 등 총 300여 점의 유물이 출수됐으며,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조선시대 조운선(漕運船)임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조운선은 국가에 수납하는 조세미(租稅米)를 지방의 창고에서 한양 남쪽 강변에 설치한 중앙창고인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는데 사용했던 선박이다.

마도4호선은 마도 북동쪽 해역 수심 9~15m에 파묻혀, 선수가 남동쪽을 향해 있고, 우현 쪽으로 50°기울어져 있다.

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분청사기 모습ⓒ문화재청

잔존 규모는 길이 13m, 폭 5m, 선심 2m이고, 밑판 3열,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선미재도 일부 남아있는 평저선(平底船)이다. 조선시대 선박구조를 그려놓은 ‘각선도본’에서 보여주는 조운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선수 판재가 조운선은 가로로, 군선은 세로로 그려져 있다.

과거 확인된 고려시대 선박은 선수 판재가 세로로 설치됐지만, 마도4호선의 경우 선수 판재가 가로로 설치됐다. 또한,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이 약 2m 간격으로 6곳에 설치됐는데, 고려시대 선박들은 비교적 얇은 원통목을 사용했지만, 마도4호선은 두껍고 강한 횡강력재를 사용해 선체의 견고함을 높이고 더욱 세련된 가공 기술을 선보여 한층 진일보한 조선시대 선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선박 내부에는 목간 60여 점도 함께 출수됐다. 목간 대부분에는 발신처인 나주와 수신처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이 적혀있으며, 이는 전라남도 나주 영산창에서 거둬들인 세곡 또는 공납품을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던 조선시대 국가기관인 광흥창으로 옮기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에 발굴한 마도1, 2, 3호선은 대부분 당시 권력자나 개인에게 보낸 화물들을 운송하던 선박으로 조운선 여부가 명확하지 않지만, 마도4호선은 광흥창이라는 국가기관으로 보내는 공물을 적재해 조선시대 최초의 조운선으로 판단하고 있다.

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나주광흥창 명 목간ⓒ문화재청

광흥창은 조선시대까지 관리들의 연봉 또는 월봉을 관장하던 기관으로 고려 충렬왕 때 설치
돼 조선까지 존속한 관아다. 현재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자리한 광흥창역(지하철 6호선)부근이 당시 광흥창이 있던 자리다.

이번에 출수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는 140여 점으로 그 중 3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조선시대 궁궐에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하는데, ‘내섬’을 분청사기에 새기기 시작한 때는 관청의 명칭을 표기하도록 하는 태종 17년(1417)으로 알려졌다. 내섬시 조선시대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2품 이상에게 주는 술과 안주, 왜인(倭人)에게주는 음식물과 직조물 관련 일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이와 함께 자기에 집단국화문과 승렴문(새끼줄문양)이 새겨진 점, 중앙에 문양을 성글게 새긴 제작기법 등을 살펴보면 15세기 초반 제작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분청사기는 10점 혹은 20점 단위로 포갠 후 60점의 분청사기들을 성글게 엮어 만든 망태기에 담아 포장하였다. 자기를 기형별로 포갠 후 4개의 나무 막대를 길게 덧대 새끼줄로 묶었던 고려시대 포장 방법과는 다른 방식이 처음 확인돼 흥미를 끈다. 따라서 마도4호선은 1410~1420년대(태종~세종)에 물품을 싣고 항해하다가 마도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선체 내부 가룡목과 원통목.ⓒ문화재청

이 밖에도 세곡으로 선적한 벼와 보리 그리고‘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전라도 나주목 토산' 편에 공물로 기록된 대나무, 숫돌 등도 함께 출수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마도4호선 발굴조사의 중간점검을 통해서 최초의 조선시대 조운선 구조를 확인했다. 함께 출수된 목간과 분청사기 등의 유물들은 조선시대 초기 공납제도의 모습과 당시 공물의 운송방식인 ‘조운’에 대해 최초 확인된 실증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최초의 조선 시대 선박으로 해양사, 경제사, 도자사, 선박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에 귀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도4호선 금년 10월 말까지 발굴조사를 할 계획이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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