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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외환은행...48년만에 '역사 속으로'


입력 2015.09.01 12:06 수정 2015.09.01 17:18        임소현 기자

1967년 한국은행 외환관리과 분리돼 설립...48년만에 하나은행과 통합

서울시 종로구 외환은행 본사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외환은행이 출범 48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일 KEB하나은행의 출범으로 외환은행의 이름은 앞으로 문서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이날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 통합해 출범한 KEB하나은행이 첫 발을 떼면서 외환은행 직원들은 새로운 직장명을 얻게 됐다. KEB(Korea Exchange Bank)라는 영문명이 앞에 남긴 했지만 외환은행은 간판에서 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았다.

1967년 한국은행 외환관리과가 분리되면서 세워진 외환은행은 자본금 100억원을 한국은행이 모두 출자해 시작됐다.

1969년에 한국수출입은행법이 제정되면서 외환은행이 만든 것은 기업의 수출입 관련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중장기신용부. 이 부서는 이후 1976년 한국수출입은행으로 독립했다.

이처럼 정부가 외국환 전문은행을 키우겠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외환은행은 7~80년대 대한민국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 중심에 서게 됐다.

1970년 한국외환은행 을지로지점은 서독에 파견된 광부들의 송금 계좌를 전담했고, 1971년 서독 간호원들의 송금 계좌도 맡는 등 역사의 한 획을 차지했다.

최초 행렬도 이어갔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 예금을 취급한 외환은행은 197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다.

1985년 외환은행은 88올림픽대회 금융부문 공식 후원사로 지정되고 1987년 88올림픽 입장권을 독점 판매하는 계약을 맺어 국민들의 한마음으로 열광한 88올림픽에도 기여했다.

이어 1989년 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국책은행으로 수혜를 누리던 외환은행은 일반은행으로 전환됐다. 일반 은행으로의 전환이 외환은행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외환은행은 199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이듬해 자본금을 8250억원까지 늘렸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설하기까지했다.

하지만 이후 외환은행이 맞닥뜨린 가장 큰 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외환은행은 결국 최대주주가 한국은행에서 독일 금융그룹 코메르츠방크로 변경됐다.

외국계 자본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외환은행은 2003년 급기야 미국계 론스타펀드에 1조3833억원을 받고 인수됐다.

이 해에 발생했던 '신용카드 대란'으로 외환신용카드는 경영 위기에 빠지면서 2004년 한국외환은행에 합병됐다.

2006년에는 국민은행, 2007년에는 홍콩 금융그룹 HSBC에 매각될 상황에 처했지만 무산되고 2011년 12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외환은행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2012년 2월 한국외환은행은 하나금융그룹으로 편입됐고, 2013년 4월에 하나금융지주의 100% 자회사가 됐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48년을 지내온 외환은행은 2015년 9월1일 하나은행의 품에 안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임소현 기자 (shl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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