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어차이고 떼먹히고...이들이 없으면 국회는 멈춘다
'가방모찌'에서 각분야 전문가로 탈바꿈…양성시스템 만들어야
얼마 전 여당의 A 의원이 자신의 보좌진인 비서관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막말을 한 것이 보도돼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A 의원은 보도가 나간 후 “절대 때린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총원이 7명인 A 의원실을 지난 1년간 떠난 보좌진이 7~8명에 이른다는 점은 그 후로도 논란이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야당의 B 의원은 보좌진을 향해 일명 ‘갑질’을 일삼으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지갑을 찾아오라고 강요하고 견디다 못한 보좌진은 사비로 같은 제품의 지갑을 사고 그 안에 현금까지 사비로 넣어서 의원이 원하는 대로 ‘찾아’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이런 소문은 그저 소문에 그치기도 하고 더한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국회의원의 보좌진은 모시는 의원이 전적으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절대 ‘을’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을 보좌할 보좌진을 국비로 최대 9명을 거느릴 수 있고 이들의 채용과 퇴직은 전적으로 의원의 자유다.
18대 국회 이후 의정활동의 척도 중 하나로 대변되며 유행처럼 번진 입법경쟁으로 인해 국회의 입법기능이 급격히 증가했다. 덩달아 보좌진의 전문성과 업무량도 급격히 증가했지만 이들의 처우나 제도는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가방모찌’→‘각 분야 전문가’로 발전…하지만 관련 교육·양성 시스템은 전무
국회의원의 보좌진은 공식적으로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에서 규정하는 국회의원 입법활동 지원객체로서 4급 상당 2인, 5급 상당 2인, 6급·7급·9급 상당 1인 등 총 7명이다. 이들은 나라가 고용한 별정직 공무원으로 국회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그동안 세간에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정무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의 추세는 보좌진이 정무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정책적 전문성을 띠고 있다. 의원 역시 정책적 전문성을 갖춘 보좌진을 선호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렇게 보좌진 인력이 전문화, 고학력화 되는 것에 반해 실질적 입안주체인 보좌진을 체계적으로 교육·양성하는 시스템은 전무하다. 많은 수의 석사 이상의 보좌진은 입사 후 자비를 들여 석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18대 국회부터 보좌진 생활을 해온 C 보좌진은 “국회와 가까운 Y대학의 경우 야간 대학원의 상당수가 국회 직원”이라며 “학비에 대한 부담이 크지만 그렇게라도 전문성을 띄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수의 비서들은 의원실 인력의 병목현상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의원실은 대체로 19대 국회부터 도입된 무급인턴(2인), 유급인턴(2인), 하위직급(6, 7, 9급 비서)과 상위직급(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인턴은 책임 있는 입법업무를 수행하기 힘들고 상위직급인 일명 ‘관’급은 정무적인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또한 하위직급에서 관례적으로 수행비서 1인과 행정비서 1인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구조라면 하위직급 비서 한 명과 ‘관’급 상위직급 1~2명이 정책입법을 도맡게 된다. 이에 대해 D 보좌진은 “의원실 인력 구조가 병목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상대적으로 일이 몰리는 병목에 해당하는 직원의 퇴사와 이직이 잦다”고 귀띔했다.
상위직급인 ‘관’급으로 재직하다 이직한 E 보좌진은 “일이 몰리면서 허리가 부족하니 병목에 해당하는 비서들도 힘들지만 상위직급도 죽을 맛”이라며 “의원실의 인력구조를 개편해야할 필요성은 예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의원실 보좌진은 직급에 관계없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미국은 하원의원의 경우 보좌진으로 상근 18명을 두고 상원의원은 평균 34명의 보좌진을 둔다”며 보좌진의 절대 수가 부족한 점을 과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지만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 의원회관은 불야성을 방불케 한다. 사상 최초로 추석을 가운데 두고 실시되는 분리국감 탓이다. 게다가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으로 20대 총선을 노리는 대부분 의원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D 보좌진은 “국감준비에 들어가면 국감이 끝날 때까지 하루에 잠을 4시간 이상 잘 일이 별로 없다”며 “항상 만성피로에 시달리지만 모시는 의원이 잘 돼야 내가 잘 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국회를 위해 보좌진의 인력구조 개편이 필요한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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