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과서 들여다보기⓶-역사왜곡>
"첫 통일국가는 고려" "이순신·권율, 양반 위해 싸워"
현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역사교과서, 문헌, 보도매체 등의 역사 왜곡 실태를 조명하는 저서가 출간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한 당국은 역사 왜곡의 수준을 넘어서 '역사조작', '김씨 가족의 우상화 및 신격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북한 김씨 일가에 우호적인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데일리안'은 서옥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의 저서 '북한 교과서 대해부-역사와 정치사상교육을 중심으로'를 입수해 북한의 역사왜곡 실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관련 특정 성향의 편향된 역사 기술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북한의 교과서는 역사 왜곡 수준을 넘어 신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중 한 예로 북한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훈민정음 창제자를 ‘우리 인민’으로 기술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서옥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오는 11월 출간할 예정인 ‘북한 교과서 대해부-역사와 정치사상교육을 중심으로’라는 저서를 통해 북한 역사교과서의 왜곡 실태를 낱낱이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서 위원은 “북한 교과서들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1444년 1월 ‘우리 인민’이 만든 훌륭한 민족글자라고 가르친다”며 “북한이 지배계급을 이르는 ‘봉건통치배’들이 당시 통치를 강화하는데 새 글자가 필요해 집현전에 학자들을 모아놓고 연구를 시켰다고 적었을 뿐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고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 같은 내용은 서 위원이 저서에 수록한 ‘조선력사(고등중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88(1999년) 33쪽’의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해당 자료에는 ‘우리 선조들은 인민들이 쓰기 좋으며 우리말을 적는데 잘 맞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 것을 요구’, ‘봉건통치배들도 저들의 통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 글자가 필요해 당시 왕이었던 세종이 우수한 학자들 집현전에 모아놓고 연구사업 실시’ 등의 내용이 기술돼 있다.
이밖에도 북한은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투쟁에 대해서도 대다수의 피지배층 계급만을 강조하고 있다. 저서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일본을 무찌를 수 있었던 건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운 것과, 당시 조선의 군사력이 일본의 군사력보다 강했다는 내용뿐, 전쟁을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의 업적과 역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히려 이들이 봉건왕권에 충성해 양반 지주 계급을 위해 싸웠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북한의 중등학교 역사책인 ‘조선력사’의 머리말에 ‘왕이나 봉건통치지배들의 력사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투쟁의 력사를 알자는 것’이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서 위원은 남한의 역사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 교과서에서 전쟁영웅에 대한 평가가 없거나 제한적인 것은 역사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 김일성 밖에 없다는 주체사관의 수령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독자적인 역사관을 통해 통일신라시대를 후기신라로 명명하며 그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서를 보면 남한의 역사교과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영토 면에서 불안정하고 외세를 끌어 들였다는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최초의 통일로서 우리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북한의 교과서는 고려 건국이 최초의 통일이며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 계속해서 배신행위를 했다며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역사를 날조해 신화를 현실로 끼워맞추는 행태도 낱낱이 드러났다.
저서에 따르면 우리 역사학계에서 단군과 단군이 세웠다는 고조선이 신화인지 역사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 북한은 단군을 동양최초 국가창설자라며 실존인물로 못박았다.
그러면서 고구려 귀족무덤을 단군릉으로 조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북한정권이 소위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정권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단군릉이라고 주장하는 무덤은 5세기 이후 고구려의 특징적인 무덤양식으로 돌로 무덤 칸을 만들고 흙으로 둥글게 덮은 석실봉토분이다. 크기는 동서 273cm, 남북 276cm의 작은 무덤으로 네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모줄임천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근거에 북한은 해당 무덤이 고구려 때 개축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단군무덤이 고구려 때 개축됐다는 근거는 어느 기록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단군이 단군이 B.C. 31세기말(B.C. 3018년) 평양에서 태어나 25살 때인 B.C. 2993년에 동방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우고 초대국왕이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동국통감 기술에 따른 단군조선의 건국연대 B.C. 2333년에 비해 600년이나 빠르다.
이에 서 위원은 이선복 서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만약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한반도에서는 황허유역에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때보다 1000년 이전에 이미 고도의 청동금속문명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며, 이야말로 한반도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를 새로 쓰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대발견”이라고 반박했다.
이 외에도 북한은 △‘대동강문화’학명 부여(세계 5대문명발상지로 공식 선포) △고조선의 후국이자 고구려의 전국으로 ‘구려’를 설정해 교육 △제너럴셔먼호사건 때 미국을 물리친 사람은 김일성 증조부라고 주장하는 등 독자적인 역사관을 통해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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