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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다된 아버지는 칠십 딸에게 '백마강' 불러주며...


입력 2015.10.21 20:11 수정 2015.10.21 20:22        금강산 공동취재단 = 데일리안 목용재 기자

이산가족상봉 이틀째, 온가족이 살던 초가집 그림그려 선물주기도

제20차 이산가족 단체상봉 1차 행사가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가운데 남측 딸 이정숙이 북측 아버지 리홍종에게 뽀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1차 단체상봉 이틀째인 21일 저녁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열린 가운데 남측 권영숙씨가 북측 오빠 권영구씨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1차 단체상봉 이틀째인 21일 저녁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열린 가운데 남측 남순옥씨가 북측 동생 남철순과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빠 지금도 그때 부르던 노래 기억나요? 노래하실 수 있어요?"

일흔을 바라보는 딸인 이정숙(68) 씨의 부탁에 아버지 리흥종(88) 씨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노래 ‘백마강’을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 하던 말보다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손에는 65년간 만나지 못했던 딸 이정숙 씨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정숙 씨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정숙 씨가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남쪽에서 올라온 리흥종 씨의 여동생 이흥옥(80) 씨와 조카들은 부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리 씨의 고향은 백마강 인근 예산으로 ‘백마강’은 리 씨가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다.

21일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된 단체상봉에서 다시 만난 북측 아버지 리흥종 씨와 그의 딸인 이정숙 씨는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재회하자 노래부터 불렀다.

리 씨의 여동생 이흥옥 씨는 “(오빠는) 어려서부터 기타치고 노래도 잘 하셨어”라면서 리 씨의 노래를 청했고 딸인 이정숙 씨도 “아빠 노래할 수 있어요?”라고 아버지의 노래를 청했다.

이를 들은 이정숙 씨가 “아빠,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 하시네”라고 칭찬을 하자 리 씨는 또 다른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산의 아픔을 나눴다.

노래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지만 남북 체제의 특성으로 인한 차이 때문에 안타까운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정숙 씨가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배운 일본노래를 아버지인 리 씨에게 들려주려다가 “북에서는 그 노래 부르면 안 된다”면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이정숙 씨가 “5~6살 때 잔치 있을 때 마다 어른들이 나를 가운데 놓고 노래를 시켰어. 엄마가 나 3~4살 때는 나를 팔에 놓고 노래를 부르셨어. 아빠 생각나면 나를 안고 이 노래 하셨는데, 내가 아빠한테 지금 그 노래 불러줄까”라면서 일본가요를 부르자, 리 씨는 “그 노래를 알아? 북에서 그 노래하면 안 돼”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 씨는 재차 “여기 가만히 귀에다 대고 해드릴께. 아빠한테만 한다구요”라고 하자 리 씨는 “북에서 그 노래 하면 안돼. 안돼”하고 재차 사양했다.

65년 전 온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그려 남한의 동생들에게 선물을 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됐다.

북측의 친형인 리한식(87) 씨를 만나러 간 남측 막내 동생 이종인(55) 씨가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자 리 씨는 그 자리에서 65년 전 온가족이 함께 살던 경북 예천의 초가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리 씨는 목에 걸고 있던 코팅된 이름표를 자로 대고 정성스럽게 그리면서 40분여 만에 그림을 완성시켰다. 담벼락, 초가의 음영, 마루 무늬, 처마 밑 그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리 씨는 65년 전의 ‘보금자리’ 그림을 막내 동생에게 선물했다.

이종인 씨는 그림을 받아들면서 “형님 내가 잘 간수할게요. 여기에 형님이 동생한테 준다고 글도 하나 써주세요”라고 요청하자 리 씨는 그림 밑 여백에 ‘상봉의 뜻 깊은 시각에 그린 이 그림을 종인동생에게 선물한다’고 적었다.

‘자매상봉’을 이룬 북측 남철순(82) 씨와 남측 남순옥(80) 씨는 “병나는 것도 모르게 기쁨이 크다”, “몸살이 나도 좋다. 서로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됐으니”라며 회포를 풀었다.

남철순 씨는 “나는 너희를 만나서 이제 100살까지 살 것 같다. 너희 만나서 기운을 키워서 100살까지 살 것”이라면서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내가 여러번 했는데 자꾸 미뤄지길래 너희들이 세상에 없는 줄 알았다. 이제 내 소원이 풀렸으니 건강관리 잘해서 오래 살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1회차 행사는 2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리는 단체상봉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2회 차 행사는 24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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