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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자리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죽어도..."


입력 2015.10.26 15:26 수정 2015.10.29 15:25        금강산 공동취재단 데일리안 목용재 기자 /서울 = 하윤아 기자

<이산가족 상봉 현장>"건강해라", "다시 만나자" 또 생이별

'작별상봉' 끝으로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 모두 마무리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최고령 상봉자인 구상연 할아버지의 북측 두 딸이 그동안의 원망을 접고 노래를 불러주며 마음을 풀어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이금성 할머니가 북측의 아들 한송일 씨 품에 안겨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만나게 해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주세요!”

제20차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이 26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마무리될 쯤 남측의 한 상봉자가 소리쳤다. 구순이 넘은 아버지 배양효 씨(92)를 모시고 북측 형님 배상만 씨(65)을 만나러 금강산에 온 배상석 씨(60). 그는 다가온 이별 앞에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북측 가족들과 편지라도 주고받게 해달라는 절절한 울부짖음이었지만, 북측의 보장성원(진행요원)들은 “그만하시라”고 배 씨의 행동을 제지하기 바빴다.

배상석 씨와 함께 온 여동생 배순옥 씨(55)는 차고 있던 금붙이들을 북측 조카에게 건넸다. 그러다 북측 오빠를 꼭 붙잡고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배 씨는 “오빠랑 같이 살고 싶어. 헤어지기 싫어”라며 흐느꼈고,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북측의 오빠는 “다시 만나자”며 덤덤하게 이별을 맞이했다.

배순옥 씨는 남측 가족들이 호텔 밖에 준비된 버스로 이동할 때에도 오빠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호텔에 배치된 진행요원들이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하자 배 씨는 “이제 오빠 못 만지잖아. 이제 손도 못 만지잖아. 헤어지기 싫어”라며 오열했다. 진행요원에게 두 손을 빌며 “오빠 딱 한번만 만지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탄 배 씨는 차창 너머의 오빠에게 연신 “사랑해”라고 외쳤고, 오빠 배상만 씨는 그런 동생에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면서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이복순 할머니와 오대양호 납북 아들 정건목 씨가 버스 창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하며 헤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박 3일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남북 이산가족들은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과 마주했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아쉬움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얼굴을 부비거나 손을 쓰다듬는 등 살갗을 부대끼며 다시 한 번 혈육의 정을 주고받았다.

65년 만에 만난 아들을 앞에 두고도 치매 증세로 알아보지 못한 김월순 씨(93, 여)는 전날(25일)과 달리 아들의 얼굴을 자주 알아보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주재은 씨(72)의 얼굴을 쓰다듬고 볼에 뽀뽀를 하며 “내가 죽어도 소원이 없다”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북쪽의 아들은 어머니의 휠체어를 직접 밀어 배웅했다. 어머니 김 씨는 그런 아들에게 “같이 안 가?”라고 물었고, 아들은 “통일되면 만납시다. 어머니”라고 대답하며 참았던 눈물을 떨궜다.

이날 개별상봉에서 유일한 부부 상봉자인 남측 전규명 씨(86)는 북측 아내 한음전 씨(87)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우리 이쁜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개별상봉 2시간이 마무리될 때 쯤 상봉시간이 10분 남았다는 북측 안내원의 방송이 나오자, 전 씨는 부인 한 씨의 손을 꼭 붙잡으며 “고마워. 걱정하지마. 이제 다신 못 봐”라고 아쉬워했다. 부인 한 씨는 “살아있는 거 알았으니 원 없어”라며 남편의 생일날 미역국을 떠놓겠다고 약속했다.

그간 상봉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던 전 씨는 이날 개별상봉에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아내 한 씨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이들 부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남북 가족들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최고령 상봉자인 구상연 할아버지와 북측의 두 딸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한 가운데 북측 가족들과 손을 흔들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972년 오대양호 납치사건 당시 북에 끌려간 정건목 씨(64)는 이날 마지막 상봉의 시간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이복순 씨(88)의 손을 꼭 부여잡고 흐느꼈다. 정 씨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아들이 이렇게 건강해요”라고 애써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이윽고 상봉이 끝나 남측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 어머니는 창문 너머의 아들을 바라보며 연신 창문을 두드렸고, 아들은 여러 차례 몸을 90도로 숙여 어머니께 이별의 인사를 올렸다.

2박 3일 상봉일정 내내 눈물을 보였던 남측 어머니 이금석 씨(93)와 북측 아들 한송일 씨(74)의 눈물샘은 이날도 마를 새가 없었다. 어머니 이 씨는 아들의 품에 안겨 흐느꼈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특히 어머니 한 씨는 이날 북측 상봉단장 리춘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이 테이블을 방문하자 “(아들을) 한 번 더 만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슬픔의 눈물 대신 즐거운 모습으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가족들도 있었다.

건강 악화로 전날 상봉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남측 최고령 상봉자 이석주 씨(98, 남)는 이날 기운을 내 북측 아들 리동욱 씨(70)와 재회했다. 이석주 씨는 입고 있던 검은 코트와 두르고 있던 체크무늬 목도리를 아들에게 건넸다. 그는 자신의 코트를 입어보는 아들을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들 리 씨는 “아버지 130세까지 살아야지. 나는 100살까지 살게”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소리내 웃으며 “오래오래 살아야지”라고 답했다.

65년 전 약속했던 꽃신을 마침내 선물한 또 다른 최고령자 구상연 씨(98, 남)는 이날 작별 상봉에서 북측의 두 딸 구송옥 씨(71)와 구선옥 씨(68)에게 큰절을 받았다. 두 딸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며 큰절을 올렸고, 이 모습을 보던 남측 동생 구형서 씨(42)와 구강서 씨(40)는 북측 누나들에게 큰절한 뒤 꼭 끌어안았다.

이후 두 딸들은 100세를 바라보는 아버지 앞에서 꼭 맞춘 듯 똑같은 율동으로 춤을 추며 ‘고향의 봄’ 노래를 불렀다.

이날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2차 상봉단은 북측 출입사무소(CIQ)와 남측 CIQ를 통과해 이날 오후 5시경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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