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한' 북 '이산가족상봉' 손에 쥐고 한국 언론 통제?
<기자수첩>노트북 전수조사 등 북 '몽니'에 통일부 기자단 성명서
지난 20일부터 진행된 제20차 이산가족상봉 1회차 행사에서 취재차 방북하는 기자들에게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북한 당국이 방북 기자단의 취재장비를 샅샅이 뒤지질 않나, 취재된 방송 내용을 사전검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질않나, "법과 원칙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지만 누가봐도 비상식적 행태의 연속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입을 틀어 막고, 귀를 막는 북한 정권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을 알고 있을지 만무하지만 방북 기자단을 상대로 벌인 사전검열은 세계적인 통념을 벗어난 몰지각한 행위였다.
이런 북한의 몽니로 이산가족들의 방북이 지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북한 당국은 지난 20일 방북 기자단 전원의 노트북을 수거, 전수 조사한 후 “최고 존엄과 관련된 자료가 있다” 주장하며 기자 3명에 대한 노트북을 일방적으로 압류했다. 방북 취재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었다. 여기에 “개인의 부주의로 이 같은 일이 발생했으니 벌금과 조서 등을 작성하라”고 황당한 요구까지 했다.
방송용으로 취재한 자료들을 남한으로 보내는 ‘행낭’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시비도 이어졌다.
북한 당국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취재 장면을 촬영한 방송 테이프와 사진들을 보여 달라고 사전검열 의도를 내비쳤고 이 때문에 행낭은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행사장과 북측 CIQ(남북출입사무소)를 두세 차례 오고갔다. 결국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전해야 하는 방송매체들의 보도가 늦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24일부터 진행된 2회차 상봉 때에도 방북 기자단이 휴대한 장비 가운데 이동식저장장치 1개와 녹음기 1개를 압류했다. 북한당국이 이산가족상봉 행사라는 인도적인 사안을 손에 쥐고 남한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이었나. 그 치졸한 행태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방북기자단의 이산가족상봉 취재내용이 북한 보도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남한에 보도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사전검열’까지 한다는 것은 남한언론 길들이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들이 남한 언론의 애독자(?)라는 것은 안팎으로 전해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애독자들이 언론통제까지 나서려 한다는 점은 분수에 넘치는 행위다.
이 같은 북한 당국의 몽니에 ‘들이받고 싶은’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상봉 나흘을 앞두고 ‘생트집’을 잡으며 상봉행사를 전격 취소한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이산가족상봉 행사도 진행되고 있던 지난주, 언론이 북한의 행태를 지적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니 북한의 치졸한 조치에 더욱 기가 찼다.
이에 통일부 기자단은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종료된 이후인 27일, 북한에 대한 항의성명을 통해 비판 입장을 내놨다.
성명의 주요 요지는 △북한의 남한언론 간섭 중단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할 경우 언론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을 것 △북한의 부당한 태도에 대해 정부의 강력한 대응 요구 등이다.
성명은 “기자들이 남한 내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해오던 컴퓨터를 일일이 검열하고 문제 삼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일뿐 아니라 기자들의 남한 내 취재, 보도 활동을 간섭하는 부당한 행위”라면서 “우리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가 남한 언론의 취재, 보도에 간섭을 가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북한의 행태를 꼬집었다.
언론의 자유는 1647년 및 1648년 영국 국민협정이 헌법으로 보장하려고 한 것이 최초다. 1689년 권리장전에서는 의회에서의 언론자유가 보장됐고 1695년 검열법을 폐지함으로써 비로소 출판의 자유가 확립됐다.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프랑스 등 모든 입헌국가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게 된 만큼 언론의 자유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오래된 상식이다.
북한이 언제쯤 17~18세기 상식을 깨우칠수 있을지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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