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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역사는 또 '최영'을 버리고 '이성계'를 택했다


입력 2015.12.16 11:14 수정 2015.12.16 11:31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대중문화 속 '요동 정벌'의 폄하

안타깝다. 고려의 최영은 결국 이성계에게 밀려났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판타지 픽션 사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정사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 기반을 다진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는 이러한 위화도 회군을 다루면서 요동이 갖는 역사경제적인 그 의미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요동정벌이 단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짓이라는 것만 강조한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은 오히려 수백년 동안 조선 백성은 물론이고 우리 민족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

위화도 회군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지정학적인 상황을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중국이 지금 현재 대국굴기하며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위화도 회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은 참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위화도 회군이란 단순히 요동정벌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동아시아 패권의 중요한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번영과 앞날의 개척을 위한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무엇보다 정도전이 태종 이방원에 밀려난 것은 더욱 결정타였다. 그래도 정도전은 요동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고려의 지배세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력을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맞다.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상업이 아니라 농업이 경제 기반이며, 정치는 무신의 나라가 아니라 문신 그리고 불교의 나라가 아니라 유교 특히 성리학의 나라를 꿈꾸었다.

교양이 있고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지배 엘리트의 모범을 보이는 힘과 돈의 나라가 아니라 문화와 예의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누구나 공평하게 소유하고 나아가 소박하고 자족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넘어 공동체적인 가치의 실현과 가족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농업생산과 중앙 통제적 집중과 의사결정을 통해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국방력 강화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요동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고려의 지배구조를 깨면서 권력교체를 이루었지만, 요동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는 최영이 바라보는 관점과 동일했다. 최영은 대륙에서 전투 활동을 오랜 동안 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요동은 다시 고토를 회복한다는 명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원명 교체기에 아직 명나라는 북쪽에 힘이 미치지 못했다. 어느 세력의 땅도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대주의자들은 명나라를 등에 업고 권력 기반을 공고하게 만들려고 했다. 이를 대변하는 이가 태종 이방원이었다. 최영이 이성계를 요동정벌의 리더로 임명한 것은 이미 그가 요동을 정벌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동을 정벌한 고려군의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요동정벌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어불성설이었다.

요동 정벌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내수시장의 확장이었다. 그것은 현재 한국이 염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 그리고 목축과 농업 생산의 기반이었다.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곳이었다.

요동 정벌은 나라가 기본적으로 안정을 기할 수 있는 내수시장을 확보하면서 나라의 발전을 기할 수 있다. 외세에 흔들리지 않고 수출주도형 경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외국어를 습득하기보다는 한국어를 더 열심히 하고, 외국의 장르를 수입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문화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방원을 따르는 이들은 사대명분으로 명나라 대국을 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이를 포기했다. 정도전마저 제거하고 그를 수백년 동안 배제했다. 사대주의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백성과 나라를 위한다는 이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의 시스템을 만든 최고의 리더가 요동정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것이 갖는 의미와 현실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었다. 좁고 작은 나라에서 땅을 나눠 갖고 폐쇄적인 경제 모델을 유지했던 조선은 결국 자신 스스로 세금이나 군대도 운영할 수 없는 획일적이고, 문약한 나라로 전락해 갔다.

대신 요동을 차지한 것은 만주족이었다. 결국 만주족은 북경을 공략하고 대청제국을 세운다. 만주족은 김씨의 후예이다. 갈라져 나간 지 매우 오래되어 이질적인 집단이 되었을 뿐이다. 사대주의자들 때문에 청나라와 사이가 나빠졌고, 부모의 나라 조선은 청나라의 식민지 상태에 빠졌다. 그 고통은 모두 백성들에게 전가되었다. 대청제국은 오늘날 중화민국의 강역을 만들어주었다. 중국의 부상은 바로 요동을 두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요동은 허황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의 꿈, 비전과 드림이었다.

그러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러한 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고려가 많은 문제가 있어도 여말 선초에 뜨거웠던 두 가지 선택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한번이나 제대로 부각된 바가 없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화두인데 말이다. 최영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라는 점은 안타깝다. 더구나 정도전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더욱 아쉬운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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