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 눈물 호통에 '해명' 급급 차관들
<현장>할머니들 "당신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나" 울먹이며 항의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9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 머물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 전날(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임 차관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일부 피해 할머니가 거세게 항의했고, 그는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날 오후 2시 5분경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대협 쉼터에 임 차관이 들어섰다. 임 차관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당초 임 차관의 모두발언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할머니들은 전날 회담 결과에 불만을 드러내며 임 차관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임 차관이 들어서자마자 “당신 누구냐”면서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려고 하는가. 당신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가”라며 울먹였다.
당황한 임 차관은 “일단 앉아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지만 이 할머니는 재차 “피해자들을 먼저 만나 이야기를 해줘야했다”며 회담 전 위안부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 할머니들에게 정부 측의 설명이 없었던 점을 항의했다.
아울러 이 할머니는 “아베총리가 정중히 공식 사죄하고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며 “이렇게 해도 해결됐다고 하기 시원찮을 판에 암암리로 해서 타결됐다는 게 무슨 타결이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임 차관을 다그쳤다.
옆에 앉아있던 김복동 할머니 역시 임 차관에 협상 내용과 결과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차분한 어조였지만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외교부의 협상 내용을 지적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 정부가 타협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아베 총리가 법적으로 사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는데) 타결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김 할머니는 “왜 소녀상을 들먹거리나. 이것(소녀상)은 우리 정부나 일본 정부가 터치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엄연한 역사의 표시”라며 “정부와 정부끼리 빨리 하기(결론내기) 위해 위안부 이렇게 하면 되겠지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 차관은 겨우 분위기를 진정시킨 뒤 할머니들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최초로 책임을 인정한 점 △아베 총리가 일본 내각 대신으로서 할머니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현한 점 △한국 정부가 세우는 위안부 지원 사업 재단에 일본 정부가 예산을 출연하는 점 등 이번 회담의 세 가지 핵심 의미를 언급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임 차관의 설명에도 할머니들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항의를 이어갔다.
할머니들의 항의와 임 차관의 해명이 반복되는 상황이 끝날 기미가 없자, 결국 외교부 관계자가 정리에 나섰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도 외교부 측의 요청에 따라 쉼터에서 퇴장했다. 이후 비공개 면담은 3시까지 이어졌고, 임 차관은 면담 직후 별다른 발언 없이 정대협 쉼터를 떠났다.
차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할머니들은 이번 협상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도 위안부 관련 수요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등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할머니는 “아직 타결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타결이라고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타결이 안됐으니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이 진정 위안부에 죄가 있다면 진실된 마음으로 총리가 일본 대사관 앞에 와서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며 “아직까지 법적인 사죄를 느끼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일본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막말하고 있는데, 진실된 사과와 진실된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소녀상 이전에 대한 임 차관의 발언이 있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가 소녀상을 치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니까 (임 차관이) 알겠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소녀상은 일본 정부도, 우리 정부도 치울 권한이 없다. 소녀상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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