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혼맥의 중심 기업은? 가장 화려한 혼맥의 대통령은?
<서평>소종섭의 '한국을 움직이는 혼맥·금맥'
2015년 12월 한 서울대생이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 사회적 지위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기득권세력이 모든 권력·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이 비판 의식은 현재 ‘수저계급론’ ‘헬조선’ ‘빈부격차 심화’ 등 다양한 키워드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대중은 한국사회의 부와 권력이 ‘혼맥’을 통해 세습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혼맥의 고리가 어떤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대부분 모른다. 어떤 혼맥은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또렷하게 드러나지만 또 다른 혼맥은 사돈과 사돈으로 이어지며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이에 20년 기자생활을 거쳐 현재 시사평론가, 인포마스터 사회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는 소종섭 원장은 '한국을 움직이는 혼맥·금맥'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 주요 재벌들과 언론사, 전·현직 대통령들의 혼맥을 낱낱이 드러냈다.
재계의 모든 혼맥이 통한다는 LG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화려한 혼맥을 지닌 윤보선, 메이저 언론 3사의 얽히고 설킨 관계 등,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혼맥 사례들은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전해져 내려온 사실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결탁 실상과, 촘촘하게 정리된 재계의 관계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외면하기 힘든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원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인사들의 직위는 평범한 소시민에게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며, 그들이 갖고 있는 세력과 부의 규모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소 원장은 한국 재벌 대다수가 ‘권력’과 혼맥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일제가 남긴 적산 기업을 불하받거나 전쟁 복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흐름과 발맞추며 기업을 키웠던 정경유착의 역사에서도 혼맥의 활약은 여실히 드러난다.
소 원장은 “물론 유착만이 전부는 아니다. 창업가의 남다른 의지와 혜안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며 신중한 태도도 취했다. 혼맥의 흐름 속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인물들의 비화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독자에게 무언의 메시지와 흥미를 제공한다. 혼맥은 단순히 완성된 권력을 공고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탄생 배경, 성장 동력, 한 인물의 일생 자체 또한 포괄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유착은 비리와 부패를 낳고 이는 곧 계층간, 세대간 갈등의 원천이 된다. 장기적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사회의 개별화는 갈등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
그동안 재벌은 우리 사회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공을 쌓아왔고, 지금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인정해 마땅하나 소 원장이 그려낸 얽히고설킨 재계 관계도는 그 자체로 혼맥 문화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어 소 원장은 한국을 사실상 세습사회로 규정한다. “재계·정계·법조계·연예계 등 어디를 돌아보아도 부와 권력의 세습은 점점 늘고 있다”며 “기득권이 기득권을 낳는 밑바탕에는 결국 혼맥이 있으며 최근 유행하는 ‘금수저론’역시 이런 기득권 세력 끼리끼리의 혼맥 문화를 반영 한다”고 지적한다. 소 원장에 따르면 한국의 혼맥문화는 일시적인 사회현상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틀’로서 자리 잡았다.
다만 소 원장은 맥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충실할 뿐, 그 맥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부와 권력을 끌어당기는지에 대해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경구로 일축한다. 이는 독자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기를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맥을 통한 권력의 세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감시·관심이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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