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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런데 송중기가 뭐길래...


입력 2016.03.17 09:56 수정 2016.03.17 10:09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위기와 불안의 사회, 본능적 방어기제의 작동?

드라마 '태양의 후예' ⓒKBS

처음에 ‘태양의 후예’는 신임을 얻지 못했다. 한류스타 송혜교가 오랜만에 출연하는 드라마이면서 송중기의 군제대후 첫 작품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이기는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씨크릿 가든’의 김은숙 작가가 오랜만에 선을 보이는 드라마이기도 하면서, ‘별그대’를 의식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천하의 김수현이 출연한 드라마 ‘프로듀사’는 국내 흥행몰이에 총동원되었지만 결국 중국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별그대’는 아직 언급이 될 지라도 ‘프로듀사’는 리스트에 오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이민호의 출연 영화 ‘강남 1970’이 언급되지 않는 맥락과 비슷하다.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선호한다고 해서 방송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강남에 쇼핑을 온다고해서 강남개발에서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물론 의식있는 배우임을 부각하려한다지만 이제 현대의 팬들은 무조건 모든 것을 추종하지는 않는다. 특히 드라마 팬들은 마니아틱한 충성도를 갖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철저하게 대중문화는 수용자들의 기호와 취향을 만족시키는가에 따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수용자들이나 팬들의 기호와 취향의 기대치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거꾸로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한다. 그런 기호와 취향이 아닌 이들에게는 별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드라마의 시청률은 평균적인 기호와 취향에 회귀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갖고 있는 현실도피라는 특성을 다 갖추고 있을 법 하다. 한국이 아니라 해외 이름 모를 나라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는 설정은 흔한 설정이면서도 흔하지 않은 내용을 이루게 된다. 그것은 전형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형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재미를 부가한다.

드라마의 캐릭터를 보면 일단 남자 주인공은 특전사 장교이고, 여성은 의사로 까칠하지만 미인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할 말은 하는 자유 의사대로 살아가는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보인다.

흔히 로맨틱 드라마가 그렇듯이 모두 송혜교와 같은 외모를 지니지 않았음에도 착각과 혼동을 주는 법이다. 더구나 그녀가 얼굴에 애교와 표정 변화가 다변하다는 것도 빠드릴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멋진 남자 주인공은 여성을 위해서 희생을 감내한다. 여성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스스로 희생하는 가운데 이를 알아본 여성의 도덕적 윤리적인 죄책감이 발동하면서 두 사람은 밀당 뒤에 사랑의 감정을 키워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로맨틱한 의외의 대사들이 가슴을 설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혜교와 중기와 같은 메인 주인공만이 아니라 진구와 지원과 같은 서브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기호의 다양성을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남자 사이에 케미의 기운이 감돌게 하는 브로맨스도 부가된다.

여기에 외부 변수가 하나 추가되는 모양새였다. 많은 심리학 실험에서 보여주듯이 위기와 재난 상황은 남녀의 케미를 증가시킨다. 특전사라는 코드가 이미 내포하고 있듯이 테러와 전투 그리고 재난 상황 속에서 남성이 여성을 케어하는 모습은 언제나 고전적인 전형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낭만적인 정서를 자극한다면 완전히 전형적이지도 않다. 더구나 한동안 이런 해외로케의 사전 제작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무난하다.

더구나 ‘파리의 연인’이나 ‘시크릿 가든’과 같은 재벌가이야기는 없다. 그런 드라마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왜냐하면 일단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부유하지만 상처받은 남성 캐릭터에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스스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상은 당당함을 통해서 수평적인 로맨틱한 사랑의 자격이 있어 보인다. 이런 여성에게 마초같은 스타일은 존립을 할 수 없으니 강한 듯하면서 부드러운 연하남의 캐릭터라면 훨씬 더 상호보완의 매력을 증대 시킬 만하다.

당연히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현실도피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맞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공간도 필요하다. 그러니 현실의 공간에서 차라리 벗어나 있다. 그 현실을 벗어난 공간은 중국인들에게 한국도 더 이상 아니다. 한국을 낭만화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이른 셈이다.

별그대처럼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공간 자체를 제3의 공간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현실에 없는 결핍된 무엇인가를 충족하기 위해 동아시아인은 적어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난 상황과 특전사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그동안의 이성적으로 강조했던 페니미즘적인 사고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과 불투명 속에서 본능적으로 방어하려는 개별적인 선호를 통한 집단적 움직임에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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