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하마'라던 지구당, 12년만에 부활할까
지구당 부활 관련법 개정안 이르면 19일 윤곽
선진국 사례보니 '지역분권형' 지구당 형태 많아
지구당 부활 관련법 개정안 이르면 19일 윤곽
선진국 사례보니 '지역분권형' 지구당 형태 많아
금권선거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폐지됐던 '지구당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12년 전 지구당 폐지로 정당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구당 부활 방침을 정하고 관련법 개정 의견을 제출키로 한 상태이며,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 산하 선거제도개혁소위는 지구당 폐지의 내용을 담은 정당법·정치자금법 등의 개정안을 공식 의제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이는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사이의 형평성, 현역과 원외를 막론하고 편법 운영하고 있는 지역구 사무소 등의 정치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당수의 학자들조차 이른바 '오세훈법'(지구당은 불법 선거운동의 온상지로 지목돼 2004년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주도한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개정 과정에서 폐지가 결정됐다)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어 합리적인 개선책 마련이 필요할 전망이다. 다만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여부가 제도 안착의 관건으로 꼽힌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 산하 선거제도개혁소위는 한국정치학회와 공동으로 공청회를 열어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공청회에는 강원택 한국정치학회장과 서강대 서복경, 건국대 이현출, 목포대 김영태 교수 등이 참석했다.
강원택 한국정치학회장은 "학문적으로는 오래 전에 논의됐던 내용들이 내년 민주화 30년을 앞두고 한단계 더 심화돼 나가기 위해 정치관계법의 개정 필요성을 느꼈다"며 "지금은 법적, 제도적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눈 앞에 닥쳐올수록 법을 개정하기는 어렵다. 새로 원이 열렸을 때 선거법 논의를 자연스럽게 하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정당의 지역 하부 조직인 ‘지구당’은 1962년 도입됐지만 고비용 저효율에다 ‘조직동원 정치’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마침내 2004년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에서 ‘금권선거 청산’이란 명분속에 폐지됐으며, 대신 보다 느슨한 조직인 당원협의회 체제가 도입됐다. 정당법 제37조 3항에 따르면 국회의원 지역구와 자치구·시·군, 읍·면·동별로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를 둘 수 있지만 당협위원회는 정당법상 정당은 아니다.
오세훈법의 핵심은 우선 지구당 폐지다. 지구당 폐지는 고비용 정치 문화를 바꿨지만 풀뿌리 정치 기반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사무실 혹은 후원회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당원 모임 및 교육을 하거나 선거 관련 논의를 하면 불법이다. 후원회 업무 회의는 사무실에서 하고, 선거관련 회의를 할 때는 외부로 나가야 하는 식이다. 현역 의원이 아닌 당협위원장(새누리당) 혹은 지역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사무실을 둘 수 없다.
지역구 혹은 후원회 사무실 비용에는 월 500만~1000만 원 덩도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은 후원금에서 충당하거나 사비로 충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지구당을 사조직으로 변질시키고,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공청회의 개정의견에는 자구당 소속 당원이 납부한 당비는 일정 비율만큼 자치구, 시, 군당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로 정하도록 하여 지구당 활동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지구당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김영태 목포대 교수는 △지구당 대표자는 해당 당부의 당원총회에서 비밀투표 방식으로 선출 △대표자가 공직선거에 입후보하려면 해당 선거의 선거일 전 1년(재보궐선거는 사유발생 후 10일)까지 사퇴 △지구당의 당비, 국고보조금, 후원금의 수입·지출에 대한 회계보고 의무화 △수입·지출 내역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 등의 개정의견을 냈다.
지구당 폐지로 지역의 정치적 민원이나 중앙정부 혹은 중앙정치권을 향한 민심 수렴이 크게 위축되는 역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문제점이 지구당 존속의 부작용을 상쇄할 만큼 부각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내 정당이 '중앙당 집중형'이라면 해외 선진국들은 '지역 분권형'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 '지구당'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전당제도에 대한 법 체계는 비교적 단순하며, 당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미국의 지역 정당은 '상향식' 구조로 이뤄져있다. 각 주 별 정당에서 선출된 위원들이 상급 단위인 중앙당의 전국집행위원회를 구성한다. 중앙당 차원의 정당 가입은 불가능하며 자신이 사는 각 지역의 정당에만 가입할 수 있다. 독일은 지역 정당이 연방 조직, 주 조직, 지역 조직으로 세분화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지역 정당은 다양한 외곽 조직을 두고 있으며 정당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프랑스는 기초자치단체인 '코뮌' 단위와 도 단위, 전국 단위 조직으로 꾸려진다. 정당은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지만 정당이 법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역 관할 경시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 영국의 정당은 선거에서 후보를 낼 수 있는 등록정당과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낼 수 있는 소수 정당으로 나뉜다. 정당 설립 요건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일본의 지역 정당 조직도 구성이 탄탄한 편이다. 학생 조직과 교육 조직 등을 통한 당원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지구당 부활에는 여·야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 거의 모든 당협이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고 현역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의 기득권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여·야 모두 부활 움직임을 본격화한 것이다.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지구당을 없앴던 이유가 고비용 정치 구조의 핵심에 지구당 운영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다고 진단을 해 강한 처방이 내려진 것"이라며 "고비용 정치구조로 환원되지 않고 합리적인 개선을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논의해보겠다"고 설명했다.
정치발전특위는 오는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구당 부활과 관련한 내용을 논의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안이 전체회의를 통과해도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위는 입법기능이 없기 때문에 각 소관 상임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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