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의 결론은 '혼술하고 싶지 않아, 사실은?!'
MBC '나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삶을 보여주면서 눈길을 끌었다. 관찰 예능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낭만보다는 현실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알맞았다. 실제로 그러한 싱글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들이 보기에 적합한 지는 알 수가 없다.
관찰 예능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엄연하게도 다큐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혼자 사는 삶이 예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진지한 싱글들에게는 용인될 수 없는 면이 분명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싱글족들은 혼자 사는 삶이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특히 남자들이 남자들의 삶을 내밀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남자들이다. 그들이 아주 혼자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재미나 흥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들은 어설프고 좌충우돌이고 때론 어이 없고 바보같은 허허로움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생활은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비추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이제 트렌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 싶다.
호응을 받고 있는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노총각들의 삶은 다른 싱글족을 다룬 프로그램과 달라 보인다.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과 연결되어 있다. 그 시선은 바로 노총각 연예인들의 어머니들이다. 이로써 각 개인들의 삶이 아니라 시청자들은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관찰하게 된다. 이미 프로그램의 제목 ' 미운우리새끼'에서 알 수 있다.
더 이상 노총각들은 혼자만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부모라는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싱글족의 삶을 구가하고 있어도 혼자 존재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고, 그것은 가족관계이다. 결국 100퍼센트 완전한 싱글은 없는 것이다. 또한 비록 어머니의 시선이기는 하지만 행복하고 잘사는 싱글의 삶이 없다는 것을 폭로해 버리는 것이다.
드라마 '혼술남녀'는 혼술을 매우 찬양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지만, 결국 혼술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마음이 더 강하다. 온종일 고생한 자신을 위해 성찬을 주는 것으로, 고퀄리티의 삶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혼술이 등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위장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석진의 화려한 언사가 혼술을 낭만적인 행위로 만들지만, 박하선을 통해 그것이 별 것 아니라는 점이 폭로된다.
실제로 하석진은 결국 같이할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싱글의 삶 자체를 완전한 고퀄리티의 삶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있다.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삶, 외롭고 고독한 삶을 견딜 수 있는 명분이 바로 혼술 혼밥이며, 그것의 자기 최면화가 고퀄리티의 삶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스타강사로 떼돈을 벌고 유명세를 치러도 혼자만의 삶은 자유의 이면에 고독을 배태한다. 여하간 이 드라마는 현실의 결핍을 넘어 우리가 바라는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에 따뜻한 재미를 주게 된다.
SBS '불타는 청춘'에서 중년을 훨씬 넘은 이들은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같이 하는 삶보다 혼자만의 삶을 추구했던 그들은 스스로 반려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점은 짝을 찾는 데는 나이가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청춘들만이 짝을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견을 불식시켜주는 면도 있다. 싱글족의 삶이 좋다면, 그대로 평생을 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 우려했지만 결과는 고무적이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짝을 찾는 연기만 하고 실제로는 짝을 찾지 않는 일을 염려한 것이다. 하지만 강수지, 김국진이 실제 커플로 탄생하면서, 삶과 방송이 일치되어 시청자의 호응을 받았다.
방송을 벗어나 카공족의 경우,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벗어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백색 소음, 감성 소음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카공족은 대부분 이어폰을 꽂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카페에 오로지 자신만 있다면 카페에서 공부할 맛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카페라는 곳은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맞닿아 있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찾게 된다. 스터디 모임을 하는 행위도 결국 고독과 외로움을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은 불안을 가중시킨다. 싱글족, 나홀로 족의 등장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증가할수록 그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회경제구조가 있다. 낭만도 로맨틱한 것도 아닌 현실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다시 집단주의 문화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지점을 찾고 있다. 반드시 쉐어하우스로 이동하지 않는 것은 이 따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주의 문화로 이동해왔다. 매우 급격한 이동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하지만 낭만적인 지적과 달리 싱글족 문화는 어쩔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비자발적인 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개인들은 이제 혼자 있으면서도 적절하게 다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행복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있다. 일정하고 적절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혼자 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같이 산다고 하여 완전하여 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적절한 지점을 찾기 위해 앞으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다. 싱글라이프를 찬양했던 이들도 나이가 들어 마음만은 그러하지만 겉으로는 그럴수 없는 것이 연하남 트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매체는 싱글족의 삶만 추세적으로 보여줄 뿐, 그안의 사람들이 바라는 탈고독의 욕망은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개인들이 당분간 치러내야할 과정이자 대가인지 모른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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