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 슈틸리케 재신임, 신태용은 ‘노터치’
‘유임 결정’ 슈틸리, 대안으로 신태용 급부상
시간 촉박, 신 감독 책임 떠안을 필요 없어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3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를 발탁했고, 이해할 수 없는 선발 라인업을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전술과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고,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피어오른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오랜 기간 대표팀을 이끌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별이 다가온 듯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당분간 A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하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여론에 쉽게 흔들렸던 이전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한국 축구는 과거 시간이 더 필요했던 지도자를 너무나도 쉽게 떠나보낸 적이 있다. 반면 충분한 시간을 부여했던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아쉬운 성적에도 믿음을 보였다.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물론 축구는 알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일을 계기로 반등에 성공한다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과 함께 훌륭한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모습이 행복한 상상을 방해할 뿐이다.
슈틸리케 유임, 2014 브라질월드컵과 비교하면?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가 결정된 날, 문득 2014 브라질월드컵 준비 과정이 떠올랐다.
한국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축구를 이끌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유럽 무대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두 선수가 떠난 것이었기에 후유증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한 때 ‘만화 축구’로 희망을 전했던 조광래 감독은 심하게 흔들렸다.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레바논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는 0-3 패배란 치욕을 맛봤다. 결과뿐 아니라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잦은 포지션 변경 등의 문제를 노출하면서, 조광래 감독은 결국 대표팀을 떠나야 했다.
비상사태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쿠웨이트전이 남아 있었고, 이 경기를 잡아야 한국은 최종예선에 올라갈 수 있었다. 상황이 심각했지만, 대표팀을 이끌만한 적임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강희 감독이 선택되기는 했지만, 사상 초유의 시한부 감독이란 점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최종예선 때까지만 대표팀을 이끌 감독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한국은 자칫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뻔했다. 레바논 원정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란과는 홈과 원정에서 모두 패했다. 첫 경기였던 카타르 원정을 제외하면, 속 시원한 승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쨌든 최강희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낸 뒤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선택된 것이 홍명보 감독이었다. 그는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신화를 써내며 차기 감독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만,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감독 부임은 큰 위험 부담이 따랐다.
예상대로 결과는 처참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모든 책임을 홍명보 감독이 떠안았다. ‘의리 축구’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짧은 시간 내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였던 대한축구협회의 무계획, 무대책 등의 문제들이 가려진 채 홍명보 감독만이 비판의 중심에 섰다.
슈틸리케 유임, 신태용 감독 활용하기 위한 꼼수?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결정과 함께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한축구협회가 과거에 보여준 무능한 행정과 무책임한 모습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아픈 기억을 불러왔다.
2014 브라질월드컵 준비 과정은 현재와 참 많이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표팀을 지휘한 감독 수의 차이뿐이다. 소속팀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선수의 대표팀 선발 자격 논란과 선수 개인의 잦은 포지션 변경 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다.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푸대접 역시 낯설지가 않다.
신태용 감독이 당시 홍명보 감독과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신태용 감독은 홍명보 감독 못지않게 엄청난 재능을 가진 지도자다.
하지만 두 지도자의 성장 과정은 달랐다. 홍명보 감독이 선수 은퇴 이후 곧바로 월드컵에 코치로 합류하는 등 대한축구협회의 파격적인 지원 속에 성장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달랐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는 호주 리그에 진출해 영어를 배웠고,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친정팀 성남 일화(현 성남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2010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대표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오는 5월에는 국내에서 개최하는 U-20 월드컵에서 또 하나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대회는 6월 11일 폐막한다. 대회 결과에 상관없이 신태용 감독이 U-20 대표팀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반면 국가대표팀은 6월 13일 카타르 원정경기를 치르고, 8월 말과 9월 초에 경기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을 유임하기는 했지만, 지난 3월 중국과 시리아전에서 허용준과 황의조의 교체 투입을 보면, 그가 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따라서 슈틸리케 감독이 한 번만 더 미끄러지면, 신태용 감독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면서 현 대표팀 선수들과 가깝고, 올림픽과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하며 젊은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빠삭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대안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이유로 대한축구협회의 슈틸리케 유임 결정이 신태용 감독 선임을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외국인 감독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유능한 지도자를 불러올 자금도 부족하다. 현재 대표팀 감독 후보군 가운데 축구팬들이 납득할만한 인물은 신태용 감독뿐이다.
그만큼 신태용이란 지도자의 능력과 성장 가능성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더욱 신태용 감독의 A대표팀 부임을 반대한다. 2015 호주 아시안컵부터 똑같은 선수를 고집해온 슈틸리케 감독에게 시간이 부족했다는 핑계는 타당하지 않다.
신태용 감독이 와도 여전히 대책이 없는 협회의 모습이라면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대표팀을 이끄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종예선을 운 좋게 통과한다고 해도 본선 무대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팀을 지휘한다면, 과거의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굳이 신태용 감독이 뛰어들 필요는 전혀 없다. 그는 한국 축구의 미래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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