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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문제아' '인권변호사' 그리고 '대통령'


입력 2017.05.10 16:13 수정 2017.05.10 17:02        문현구 기자

학생운동 전력으로 '옥중 사법시험' 합격에도 판사 임용되지 못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취임식을 마친뒤 청와대로 향하며 거리에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부친 故 문용형과 모친 강한옥 사이 태어난 2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어린 시절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어머니의 연탄 배달을 도와야 할 정도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싸움에 말려 친구와 의리를 지키려다 정학을 당했고, 술과 담배도 하면서 ‘문제아’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은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4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문 후보는 유신 반대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5년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돼 제적됐다. 이어 강제 징집을 받아 특전사 1공수 여단으로 배치됐다. 타의에 의한 입대로 얻게 된 특전사 경력은 안보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방패막이가 됐다.

제대 후에 전두환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됐다. 옥중에서 사법시험(22회)에 합격하면서 석방됐다.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차석이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이후 부산에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하며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이때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그 인연이 이어지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다가 건강악화로 1년만에 사직했지만 노 대통령의 탄핵소식을 듣고 변호인단을 꾸렸다. 탄핵기각 판결을 받은 후 2005년부터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깊은 신뢰를 담고 있던 만큼 노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장례를 책임졌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고, 그해 6월에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2012년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역대 야권 후보 최다 득표인 1,469만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진영 대결의 문턱을 넘는 데 실패하면서 득표율 51.6%를 얻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됐고, 2017년 3월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라며 다시 한번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5월 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20%에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이 좋아하는 한자성어는 ‘재조산하’(再造山河)다.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 준 글로,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다.

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사이에는 아들 문준용 씨와 딸 문다혜 씨를 두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 양산 자택과 건물등을 포함해 18억 6402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대선 재수생'으로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뿌리깊은 반감과 열혈 지지층의 무리한 지지행위 등은 극복해야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문현구 기자 (moonh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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